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26일 취임 후 첫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방침을 고수했다. 양국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먼저 나서라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스가 총리는 이날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라면서 “건전한 한일관계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나라(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스가 총리가 한국과 거리를 두면서 "한국 측에 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소신표명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나라”라며 “국제법에 따라 국가 간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에 비해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일본 측은 강제동원 배상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한국 대법원의 배상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한국 측이 책임지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 현금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관계 개선의 기대보다 원론적인 발언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거리를 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선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의지를 밝혔다. 스가 총리는 “납치문제가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나 자신이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결의”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미일동맹 강조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호주, 인도, 유럽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의 협력을 통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실현 등의 주장은 아베 전 정권의 판박이였다.
이에 스가 총리는 내치와 관한 연설에 주력했다.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오는 2050년까지 사실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2050 온실가스 배출 제로’ 선언을 발표했다. 휴대폰 요금 인하, 디지털청 신설 등을 거론하며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수해 성과를 실감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만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를 둘러싼 논란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3~25일 실시된 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 결과, 스가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대비 11%포인트 하락한 63%를 기록했다. ‘스가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6%로 지난달 대비 9%포인트 상승했다. 일본학술회의 논란이 지지율 하락 배경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스가 정권이 성과 도출이 어려운 한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보다 ‘개혁’ 명분을 앞세운 내치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