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특수라더니..."공멸 위기"라는 박스업계 속사정은

입력
2020.10.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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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사들, 골판지 원지 값 25% 인상 
영세 박스업체들, "거래처 잃을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여겨지는 골판지 박스 업계의 영세업체들이 공멸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규모가 큰 제지사들이 원료 공급 부족을 이유로 골판지 가격을 대폭 인상하면서도 자기들이 직접 생산하는 박스 완제품 가격은 올리지 않아 영세업체들의 거래처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25일 한국박스산업협동조합(박스조합)은 최근 제지사들이 골판지 원지 가격을 25%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2,000여개의 영세 박스 제조업체는 완제품인 골판지 박스 가격을 50%가량 인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골판지 산업의 흐름은 '폐지-골판지 원지-골판지 원단-박스'로 이어진다. 골판지 원지는 골판지를 이루는 이면지와 표면지, 골심지 등 낱장으로 된 종이를 말한다. 골판지 원단은 원지를 이어붙여 만들며, 이를 이용해 골판지 박스를 제작한다. 국내 제지사들은 원지, 원단, 박스를 모두 제조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지 시장의 90%, 원단 시장의 70%, 박스 시장의 5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박스조합에 따르면 이들 제지사는 최근 원료 수급 문제를 이유로 원지 가격을 25% 인상하기로 했다. 골판지 원지의 주요 원료는 폐지다. 제지업계는 환경부가 올해 7월부터 통관 절차를 강화한 '폐지 수입 신고제'를 시행한 이후 골판지 원료 수급에 차질을 빚어왔다. 관세청에 따르면 1월 5만9,136톤에 달했던 폐지 수입량은 8월 3만2,951톤으로 뚝 떨어졌다. 여기에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의 7.4%를 차지하는 대양제지가 이달 12일 발생한 안산공장 화재로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서 원지 수급은 더 어려워졌다는 게 제지업계 입장이다.

그러나 박스조합의 설명은 다르다. 올해 국내 폐지 값은 5년 평균인 kg당 91원에 훨씬 못 미치는 60원에 거래되는 등 원료 가격이 안정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스조합은 제지사들이 원지 가격을 인상하기 전에 수출 자제, 적자 해소를 위한 자구노력 등으로 연관 업계와 상생하기 위한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제지사들이 원지 가격을 높이면 원지를 사다 쓰는 영세업체들은 골판지 박스 완제품 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지사들은 정작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박스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박스조합 측은 지적했다. 박스조합 관계자는 "결국 영세업체들만 거래처를 잃고 연쇄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택배용 포장재로 사용되는 골판지 박스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수혜는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제지사들에게 대부분 돌아가고 있다고 박스조합은 주장했다. 박스조합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원료 가격은 인상하면서 자기들이 생산하는 완제품 가격은 올리지 않는 건 비상식적"이라며 "유예기간 없이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원지 가격 인상을 중단하고 상생의 정신으로 합리적인 인상 범위를 재검토해달라"고 제안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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