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다문 입술, 붉게 상기된 얼굴, 굳은 표정.'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10월 내내 선보이려던 대규모 집단체조 공연을 하루 만에 전면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막 공연을 관람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북한이 이달 11일부터 31일까지 '위대한 향도'라는 제목으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열 예정이었는데 취소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김 위원장의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수만명이 출연해 체조와 춤, 카드섹션 등을 보여주는 북한 특유의 체제 선전 행사다. 2018년 '빛나는 조국', 2019년 '인민의 나라'에 이어 올해는 '위대한 향도'를 당 창건 기념일에 맞춰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달 12일 김 위원장의 개막작 관람 소식을 전한 후 공연 진행 여부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개막 당일 공연을 관람한 김 위원장은 굳은 얼굴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들과 관람객에게 손 인사를 하면서도 웃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전날(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환하게 웃으며 평양 시민들과 눈 인사를 하던 모습과 딴판이다. 미묘한 분위기를 느낀 듯, 김덕훈 내각 총리와 김재룡 당 부위원장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김 위원장을 바라보는 표정도 관측됐다.
김 위원장이 공연 중단을 결정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공연 내용에 대한 불만이다. 위대한 향도는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작품으로 이날 첫 선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인민의 나라' 집단체조 개막전을 관람한 후에도 책임자를 불러 작품 내용과 형식을 지적하며 공연 중단을 지시한 바 있어 이번 공연 내용도 혹평했을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이 열병식 내용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과 달리 집단체조 공연 내용은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은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북한 당국이 계속되는 인력 동원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고려해 공연을 중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내년 1월 8차 당대회를 열 때까지 노동력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80일 전투'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80일 전투 성과를 독려한다며 전국 각지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있는데, 지난 12일 김일성광장에서만 8만명의 주민을 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수해 복구를 위해 대대적인 주민 동원 사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인민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얹어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집단체조 공연도 3~4만명이 동원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중단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북한 당국이 열병식을 비롯해 대규모 행사를 연달아 치른 터라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0일 새벽 열병식 당시 참석자와 관람객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만 이후 행사에서는 간부들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집단체조 공연은 주로 학생들이 동원되는데, 북한도 코로나19 우려로 일부 학교만 가을학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방역 상황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