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自强), 생존의 전제

입력
2020.10.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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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26년.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맹자에게 물었다.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낀 작은 나라입니다. 살아남으려면 제나라를 섬길까요, 아니면 초나라를 따르는 게 나을까요.”

등나라는 소국이었지만 문공은 나름 현군이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맹자에게 거듭 물었다. 맹자도 뾰족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죽기를 각오하고 백성과 뭉쳐 버티는 방법도 말해 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했다. 강국이 약국을 병탄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전국시대, 강한 군사력 없이 임금 개인의 덕행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문공의 눈물겨운 선정으로 파국은 비껴갔지만 그의 사후 BC296년, 결국 등나라는 송나라에 멸망당한다. 맹자와의 만남으로부터 30년, 딱 한 세대 버틴 셈이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밀로스인과의 대화(Melian Dialogue)’도 약소국의 비극을 잘 보여 준다.

BC416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 중이었던 시기, 아테네인들은 약 5,000의 군사를 거느리고 밀로스 섬에 상륙했다. 밀로스는 스파르타의 이주민이 세운 섬나라로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나 아테네는 자신들의 동맹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자 밀로스가 항변했다.

“힘으로 아테네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고하며 불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신들이 우리에게 행운을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스파르타가 우리를 도와 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는 사실과 의무감에서 우리를 구원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밀로스가 신의 가호와 스파르타의 지원을 앞세워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하자, 아테네는 신의 원칙은 우월한 자가 이기는 것이며 스파르타의 도움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고 일축한다. 결국 밀로스는 전쟁을 결행했으나 스파르타는 오지 않았다. 전쟁은 아테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협상할 때의 타협과 패배 후 항복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쟁이 끝나고 밀로스가 항복했을 때 아테네는 밀로스의 모든 성인 남자들을 처형하고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로 팔았다. 신과 의리에 막연히 기댄 결과였다.

1627년 3월 14일, 후금(後金, 청나라)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넜다. 26일 평양이 함락됐다. 27일, 조선이 적장에게 서신을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보냈다는 언급만 했을 뿐 그 내용이 없으나 청나라 ‘태종문황제실록’에 남아 있다.

“우리 두 나라는 원래 아무 유감이 없거늘 귀국은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갑자기 우리 땅을 침입했다. 예부터 약자를 능멸하는 것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백성을 이유 없이 해치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짓이다. 만약 우리가 죄가 있다 치면 당연히 먼저 사신을 보내 물어본 뒤에 성토하는 것이 옳다. 그러니 지금 어서 군사를 돌리고 화해할 방법을 의논해야 할 것이다(貴國無故興兵, 忽入我內地, 我兩國原無仇隙, 自古以來, 欺弱凌卑, 謂之不義, 無故戕害人民, 是爲逆天, 若果有罪, 義當遣使先問, 然後聲討, 今亟返兵, 以議和好, 可也.).”

논조가 너무 당당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선이 ‘갑’인 걸로 알 것 같다. ‘정의’와 ‘하늘’을 말하는 대목은 마치 밀로스인이 조선에 환생한 것처럼 거의 유사하다. 전쟁하러 온 자에게 일장훈시를 한 것이다. 그러자 청나라는 침략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들어 공박하였다. 결국 강화도로 피신한 인조는 그곳에서 청나라 사신을 만났다. 그때 인조가 사신에게 당한 모욕은 ‘청실록’에 생생히 남겨져 있다. 청나라가 형이 되고 조선이 아우가 된다는 맹세를 하고 세폐(歲幣)를 바치는 것으로 큰 화는 면했지만 운은 한 번 뿐이었다.

1636년 겨울, 청나라는 다시 넘어왔고 결과는 참혹했다. 군사력이 약한 나라의 문 앞에는 적군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도 정의도 우리의 피땀과 행동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혀를 놀려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100년 전, 1920년 10월 21일, 장엄한 청산리 전투가 시작되었다. 독립군을 기리며 강력한 군사력의 옹유에 대해 생각한다. 강대국을 상대로 아마추어 외교가 활개 치는 오늘날 더욱 간절하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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