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 토플러는 못 봤다, 혁신 과학기술이 잠식할 인간의 미래를

입력
2020.10.20 04:30
24면
<44> 미래학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미래학은 미래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대다수 대학에서 미래학은 독립된 학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관심은 대학보다 외려 기업과 사회에서 크다. 기업과 사회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대 미래를 전망하는 이 기획에서 미래학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드러커와 토플러의 미래학

미래학은 독자적 방법론에 바탕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 예측에 기반해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학문을 말한다. 대표적인 미래학자들로는 허먼 칸, 대니얼 벨, 존 나이스비트, 시어도어 로스자크, 짐 데이토, 레이 커즈와일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칸은 미래학을 정립했고, 벨은 탈산업사회론으로 깊이를 더했다.

미래학을 대중화하는 데는 앨빈 토플러의 기여가 두드러졌다. 피터 드러커와 제러미 리프킨 역시 대중적인 미래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 또한 미래를 전망하는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대중적 관심과 영향이 컸던 드러커, 토플러, 리프킨, 하라리의 미래 담론들이다.

먼저 드러커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식사회에 대한 그의 선구적 담론은 미래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드러커의 핵심 메시지는 196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지식이 중추적 생산수단을 이루는 탈자본주의적 지식사회가 열려 왔다는 것이었다. ‘단절의 시대’(1969), ‘새로운 현실’(1989),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는 이러한 변동을 다룬 드러커의 대표 저작들이었다.

한편 토플러는 1980년대 이후 미래학자의 대명사였다. ‘미래 충격’(1970), ‘제3의 물결’(1980), ‘권력 이동’(1990)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3부작이었다. ‘미래 충격’이 기술 발전을 현대 사회변동의 중핵적 엔진으로 파악하는 토플러식 미래학을 예고했다면, ‘제3의 물결’은 그 미래 변동의 방향을 포괄적으로 분석했다.



제3의 물결이란 1만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과 300년 전 일어난 산업혁명의 물결에 뒤이은, 지식정보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혁명의 물결을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의 활용, 자원의 중심으로서의 과학기술 및 지식정보의 위상, 매스미디어의 탈대중화, 대규모 공장 생산방식의 쇠퇴, 프로슈머의 출현, 사회의 중심적 단위로서의 가족의 재등장, 민족국가 역할의 축소, 초국적기업 및 지역자치단체의 부상 등이 제3의 물결을 대표하는 현상들이었다.

‘권력 이동’은 이러한 미래의 변화를 누가 주도하는지를 주목했다. 토플러는 권력의 원천이 물리적 힘과 경제적 화폐에서 컴퓨터로 상징되는 지식으로 변화하고 있고, 이 지식을 담당하는 유식계급인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가 새로운 권력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볼 때 드러커와 토플러의 담론들은 빛과 그늘을 갖고 있다. 한편에서 이들의 저작들은 정보사회의 도래와 진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상당한 설득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들의 담론들은 ‘기술적 낙관주의’를 과도하게 부각시킨 약점을 갖고 있었다. 지식사회의 진행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의 독점과 사회 양극화 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고 볼 수 있다.


리프킨과 하라리의 미래학

시민적 독자를 겨냥한 토플러의 성공은 이후 적지 않은 후예들을 등장시켰다. 그 가운데 2020년대 현재 가장 주목할 이들을 꼽으라면 리프킨과 하라리일 것이다.

‘엔트로피’(1980)로 혜성처럼 등장한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1995), ‘소유의 종말’(2000), ‘공감의 시대’(2010),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 ‘글로벌 그린 뉴딜’(2019)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아 왔다. 이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저작은 ‘노동의 종말’과 ‘한계비용 제로 사회’다.

먼저 ‘노동의 종말’에서 리프킨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적지 않은 노동자를 실업자로 전락시키는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정보사회의 도래가 정신노동마저 기계로 대체시켜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추방되는 낯선 시대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리프킨이 제시한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제3부문 창출이다.

한편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리프킨은 ‘협력적 공유사회’의 부상을 다룬다. 오늘날 기술 혁신은 한계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기업에 생산성의 딜레마를 안겨주는 반면, 사물인터넷을 소울 메이트로 하는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낳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리프킨은 2050년 무렵에는 협력적 공유사회가 지구적 경제생활에서 주요한 결정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피엔스’(2014)와 ‘호모 데우스’(2016)를 발표한 하라리는 역사학자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오래된 과거를 탐구했다면, ‘호모 데우스’는 생명의 장기적 미래를 탐색했다. 이런 그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을 내놓아 인류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신선한 분석을 선사했다.

이 저작은 인류가 직면한 기술적 도전(환멸, 일, 자유, 평등)과 정치적 도전(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을 살펴본 다음, 인류가 서 있는 절망과 희망의 현주소(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를 주목한다. 이어 인류가 자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분명한 경계가 있는지의 진실(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을 숙고한다.

회복탄력성(교육, 의미, 명상)은 이 저작의 마지막을 이룬다. 하라리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라리는 이 알고리즘의 시대에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처럼 이 책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개인의 태도에 대해 충고한다.

2020년대가 열린 현재, 이러한 미래 전망이 함의하는 바는 그렇다면 뭘까.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미래의 변화를 과장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리프킨이 주목하듯,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공유경제 등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영향 및 영토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채 변화가 안기는 정체불명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둘째,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제도적 처방과 개인적 대처가 동시에 요구된다.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은 한편으론 혁신을 가져오지만, 다른 한편으론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볼 수 있듯 독점과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이에 대한 경제ㆍ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하여, 하라리가 지적하듯, 변화에 대처하고 이를 학습하며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회복탄력성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와 미래학

우리 사회에서 미래학에 대한 관심은 높은 편이다. 그 까닭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가 추격 산업화와 추격 민주화로 특징지어졌던 만큼, 서구사회의 미래상을 다룬 저작들이 많이 읽혀 왔다는 데 있다.

우리말로 쓰인 미래학 관련 저작들 가운데 주목할 것은 국제미래학회의 ‘대한민국 미래 보고서’(2015),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ㆍ미래전략연구센터의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2019), 미래학자 안종배의 ‘미래학원론’(2020)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과 ‘미래학원론’은 2020년대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종배는 ‘미래학원론’에서 미래 연구의 주요 트렌드 이슈로 10가지를 제시한다. 저출산ㆍ고령화, 바이오 혁명, 기후변화와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초지능 세상, 교육 혁명, 감성과 영성의 시대, 개인의 글로벌화, 건강한 삶의 관리, 만물지능인터넷, 일자리 혁명이 그것이다. 더하여, 안종배는 주요 국가의 미래전략 기구를 행정부 주도형(미국), 입법부 주도형(핀란드), 사회적 대화형(독일)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미래는 거부할 수도 없고 결정돼 있지도 않다. 어차피 다가오는 미래라면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또, 어느 나라든 누구에게든 미래가 가능성의 시공간이라면, 주체적으로 나와 우리 자신의 미래로 만들어가야 한다. 대격변의 2020년대 현재는 무엇보다 미래학적 상상력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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