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안전성 우려로 차질을 빚는 새 중국ㆍ러시아 백신이 그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있다. 양국이 국가 위상을 높일 수단으로 백신 접종 속도전을 이끌면서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채 가시지 않은 중국ㆍ러시아 백신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은 중국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 '코로나백' 사용을 놓고 연방정부와 주(州)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연방 보건부는 백신 접종 시기를 내년 초로 제시하면서 코로나백을 구매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상파울루주는 12월부터 주민 4,500만명에 대한 백신 의무 접종 계획을 밝힌 뒤 "팬데믹(대유행)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코로나백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전 세계적으로 2차 확산세가 가팔라지면서 개발 속도가 더딘 미국과 유럽 백신 대신 '속성 백신'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셈이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ㆍ아시아 등지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ㆍ러시아 백신 유통 현황을 전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중국 시노팜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해 최근 한 달간 의료진ㆍ교사 등 수천명에게 투여했다. 파키스탄ㆍ인도네시아 등도 시노팜 백신 투입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는 8월에 3상 임상도 하지 않은 '스푸트니크V'를 세계 최초로 승인한 데 이어 지난 14일에는 두 번째 백신 '에피박코로나'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스푸트니크V는 수출 논의도 활발하다. 이웃한 옛 소련국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인도와도 3억회분 생산 협력 합의를 맺었고, 브라질 바이아주와는 5,000만회분, 멕시코와는 3,200만회분 구매 계약을 맺었다.
WSJ은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백신 외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권위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증거로 코로나19 대응을 자주 거론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과 러시아 백신의 유통이 빨라지면서 미국과 유럽 보건 전문가들의 우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런던 소재 국제전략연구소의 프랑수아 에이부르 선임고문은 "중국ㆍ러시아 백신은 효과는 물론 접종자 안전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서방 백신 개발업체들은 안전성과 효능이 완전히 검증되기 전에 당국 승인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한 상태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ㆍ존슨앤드존슨 등이 부작용 우려로 3상 시험을 일시중단하기도 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스튜어트 닐 바이러스학 교수는 "진행 중인 서방 의료계의 3상 시험에서 오는 12월이나 내년 1월이 돼야 유의미한 자료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백신 개발에는 지름길이 없고 지름길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며 충분한 안전성 검증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