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들어 자주 ‘반(反)민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야당 시절 날 세워 비판하던 ‘경찰 차벽’을 옹호하고, 여권을 향하는 비판적 표현에 고소ㆍ고발로 맞선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데 이어,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역할을 세게 제어하는 등 거대 여당의 힘을 굳이 아끼지 않는다. 핵심 인권이 걸려 있지만 정치적 손해가 예상되는 법안들엔 침묵 모드다. '민주' '공정' '포용'을 핵심 가치로 삼은 정당의 행보로 보기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차곡차곡 늘고 있다.
올해 개천절과 한글날 서울 광화문 집회를 막으려 등장한 ‘경찰 차벽’에 대한 여당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국민의힘은 “겹겹이 쌓은 ‘재인산성’이 국민을 슬프게 했다”(주호영 원내대표),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반헌법적 억지”(배준영 대변인) 등 지적을 쏟아냈지만 민주당은 당당했다. “방역을 책임지는 당국으로서 매우 적절한 조치”(김태년 원내대표), “국민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조치”(강선우 대변인) 등의 옹호로 맞섰다. 기본권 제한에 대한 반성적 기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회에서 ‘야당의 시간’을 거듭 봉쇄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확보한 민주당은 21대 국회의 첫 국감에서 야당의 각종 요구를 ‘정쟁용’이라고 일축 중이다. 국감은 연일 '무더기 증인 채택 불발'로 얼룩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요구했으나 민주당 반대로 국회 출석이 무산된 증인ㆍ참고인은 약 1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15일 “정부가 안전한 집회를 부탁하고 설득할 수는 있어도 집회의 자유 자체를 유사 범죄로 단정한 것은 민주적 가치에 위배되는 일”이라며 “국회에서 야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을 배제한 채 각종 조치를 떳떳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입법 추진 태도도 도마에 오른다. 정치적 부담이 크거나 당장 결론 내기 어려운 법안엔 ‘당론 없음’ 상태를 이어가는 탓이다.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는 낙태죄 관련 형법ㆍ모자보건법 정부안에 공식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이 12일 낙태죄 전면 삭제 법안을 발의했지만, 공동 발의자로 함께 이름을 올린 민주당 의원은 여성 의원 5명에 불과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안에 대한 침묵은 더 오래됐다.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로 정부안까지 추진됐던 법안이지만, 보수 기독교계 반발에 부딪힌 뒤론 여권 전체가 내내 ‘침묵 모드’다. 14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감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동성 커플 가구 조사'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맞붙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 속에 논쟁을 지켜 봤다.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제도권 내에서 차별금지법을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은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들이었다”며 "민주당이 민주주의ㆍ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고 관철 시키기보다는 정권을 유지하고 재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정당의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국회 의석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재는 다른 이런 저런 사유로 인권 법안 처리를 미루는 모양새”라며 “이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작게나마 공통적으로 걸었던 기대가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는 사실상 노무현 정신을 편의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검찰개혁ㆍ사법개혁을 강조하는 민주당이 현안의 정치적 해결보다 ‘사법의 판단’을 앞세우는 것도 갸우뚱한 장면이다. 최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자신에게 '조국 똘마니'라는 표현을 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앞서) 대통령을 쥐나 닭에 비유한 글, 그림도 있었고, 사실 관계가 구체적인 점에서 틀린 비판도 있었지만, 그런 걸 금지하거나 처벌하면 공직자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나 풍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민주당의) 주장이었다”고 지적했다.
비판적 표현에 민주당이 고소고발로 맞선 것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썼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고발하며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을 불렀고, 임 교수는 결국 최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여권 핵심 인사들이 도덕성 논란에 휩사일 때마다 ‘법적 판단’만을 잣대로 반대 공세를 펴는 것 역시 정치의 영역에 사법을 끌어들이는 장면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들 군 복무와 관련해 보좌관에 연락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국회 발언이 허위로 드러난 이후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며 되레 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갈수록 강화되는 ‘지지층과 지지율만 바라보는 정치’에 대한 확신이 민주당의 반민주 논란의 배경이라고 전문가들은 봤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제1 목표가 너무 뚜렷하다 보니, 판단 기준이 '가치'보다는 ‘지지율 유불리’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민주당이 가치보다는 실리, 정치보다는 힘의 논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정당의 성격 역시 자율적 결사체라기 보다 전직ㆍ현직ㆍ차기 대통령을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구조로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청이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권력을 쥐고도, 스스로를 상대적 약자로 인식하는 ‘피해자 서사’도 한 몫을 한다는 평가다. 박원석 의장은 “국정을 운영하는 민주당 주류가 자신을 스스로 약자로 생각하고 ‘이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에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며 “정치 혐오를 지속적으로 부추기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