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6)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 3,000만원을 받으면서 연 3.2% 금리 적용 받았다. 얼마 후 그는 같은 은행에서 비슷한 돈을 대출받은 회사 동료의 이자율이 1.5%포인트나 낮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비슷한 급여를 받고, 비슷한 액수를 빌리는데 왜 신용대출 금리가 차이 날까. 답은 '현대판 계급장'으로 불리는 신용등급 차이에 있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0.5%까지 떨어지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도 연 1%대까지 낮아진 상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연 1%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용대출이 개인의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출 가능 여부는 물론, 대출 한도와 금리를 결정하는 기본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신용등급은 금융거래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용등급이 낮을 경우,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보다 대출금리가 높아질 뿐 아니라 대출이 가능한 금액도 줄어든다. 금융회사는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빌려준 돈을 받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은 개인 신용평가회사가 ‘향후 1년간 개인이 90일 이상 연체할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1~1,000점으로 점수를 낸 뒤, 이를 다시 1~10등급으로 나눈다. 신용평가사가 이를 금융사에 제공하면 금융사는 자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에 반영해 고객의 대출 한도나 금리를 결정하는 구조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 금융권에서 신용평가 체계 기준을 현재의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바꾼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농협)에서 시범 적용했는데, 이를 전 금융권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근소한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문턱효과’ 부작용을 없앤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신용점수 767점과 768점은 1점 차이지만 등급이 각각 5등급, 4등급으로 나뉘면서 금리와 한도가 크게 달라진다. 앞으로 신용점수를 잘 관리하면, 등급에 구애 받지 않고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급증세에 제동을 걸자 각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한도는 줄이고 우대금리는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점수 관리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앞으로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기가 더욱 까다로워지는 만큼, 한 푼이라도 더 빌리거나 가능한 적은 이자로 돈을 빌리기 위해선 신용 관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의미다.
신용 관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액이라도 절대 연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용점수는 대출 기간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체 정보는 신용의 ‘적’이다. 10만원 이상을 5영업일 이상 연체하면 신용 평점이 내려간다.
불가피하게 연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금액이 큰 연체를 먼저 상환하기보다는 소액이라도 오래 못 갚은 빚부터 갚는 게 더 나을 정도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납부하는 카드 대금이나 공공요금 등은 자동이체를 해놓는 게 좋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꾸준히 쓰는 것도 점수를 올리는 지름길이다. 신용카드의 경우 한도의 50% 이내로 장기간 연체 없이 사용할 경우 점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현금 서비스나 리볼빙(일부 결제금액 이월약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한 두 번 정도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과도하게 쓸 경우 신용점수 하락 요인이 된다.
상환 능력을 뛰어넘을 만큼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 또는 대출을 자제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100% 실천하긴 쉽지 않은 만큼, 카드를 사용할 경우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체크카드는 매월 30만원 이상 사용할 경우 도움이 된다. 6개월 이상 사용할 경우 최소 4점에서 최대 40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사회초년생의 경우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을 연체 없이 1년 이상 갚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최소 5점에서 최대 45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통신요금ㆍ국민연금ㆍ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했다면 이 내역을 신용평가회사에 제출해 점수를 올릴 수 있다.
대출받을 금융사를 정할 때도 대출 가능성뿐만 아니라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 카드론 등은 은행 대출보다 신용점수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주기적으로 신용점수를 조회하는 것도 중요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용등급을 신용평가사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해야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카카오뱅크 토스,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업체들이 빠르고 간편한 신용조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정보를 자주 조회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고 아는 사람도 많지만 2011년부터는 신용조회 사실이 신용평가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며 “신용점수가 떨어지는 건 쉬워도 올리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