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프린스턴대 '인종차별'과 결별... 학교 건물에 첫 흑인 여성 이름 붙여

입력
2020.10.12 19:30
인종차별 윌슨 前 대통령 퇴출하고 
졸업생 멜로디 홉슨 이름으로 교체

미국 명문 사학 프린스턴대가 개교 274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 건물에 흑인 여성 이름을 붙인다.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전직 남성 대통령 대신 흑인과 여성을 새롭게 선택한 것이다. 최근 미국 내 반(反)인종차별 시위와 맞물려 과거와 결별하고 소수자를 보듬으려는, 진일보한 시도라는 평가가 많다.

11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린스턴대는 8일 기숙형 대학 ‘퍼스트 칼리지’를 건축하면서 졸업생 멜로디 홉슨의 이름을 따 ‘홉슨 칼리지’로 명명했다.

1991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홉슨은 2015년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될 만큼 명망 있는 흑인 여성이다. 그는 2017년 흑인 여성 최초로 경제계 상류층 모임 ‘시카고 경제클럽’ 회장을 지냈고, 시카고 흑인 청소년 활동을 돕는 비영리단체 ‘애프터 스쿨 매터스’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자선활동에 힘쓴 공로로 지난해에는 카네기 자선메달도 수상했다. 현재는 역시 첫 흑인 소유 자산관리업체인 ‘아리엘 인베스트먼트’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고 있다. 홉슨은 “후배들, 특히 유색인종 학생들이 소속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면서 “(명칭 변경을 통해) 과거를 답습할 필요가 없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숙사는 2026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 과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퍼스트 칼리지의 원래 이름은 ‘윌슨 칼리지’였다. 1913년부터 8년간 재임한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에게서 따온 건데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극단적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을 옹호했고,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1902~10) 시절에는 흑인 학생의 입학도 불허했다. 그 결과, 프린스턴대는 1870년대 흑인 학생 입학을 허용한 하버드, 예일 등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들보다 훨씬 늦은 1940년대가 돼서야 흑인 학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도 흑백 분리 정책을 지지했다.

학내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학생들은 2015년 총장실까지 점거하며 윌슨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이듬해 대학 운영위원회는 기존 명칭을 고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올해 6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윌슨 전 대통령의 흔적도 결국 대학에서 사라지게 됐다.

언론은 역사 청산을 넘어 대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프린스턴대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NYT는 “기숙형 대학은 프린스턴대에서 기숙사, 식당 및 방과후 활동이 모두 이뤄지는 학생 생활의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9일에는 코넬대가 최근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과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이름을 각각 붙인 기숙사 신축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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