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행진을 막기 위한 차벽은 흔히 ‘명박산성’으로 불린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은 정확히 말하면 경찰버스가 아닌 컨테이너를 이어 만든 벽이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으려 한 것이었다. 차벽의 기원은 2002년 미군 장갑차 압사사건 항의 시위 때 주한 미대사관을 경찰차로 에워싼 것으로 꼽힌다. 차벽이 과도한 기본권 침해냐,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위 진압 수단이냐는 논란은 그만큼 오래됐다.
□9일 한글날에도 광화문 도로 가에는 차벽이 세워졌다. 비판 여론 탓인지 개천절 때처럼 광화문광장을 에워싸지는 않았다. 대신 경찰은 미로처럼 철제 펜스를 치고 통행하는 시민들을 불심검문했다. 과도한 집회 차단 노력은 외신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의 채드 오 캐롤 기자는 트위터에 광화문에서 잦은 검문을 받는 영상을 올리며 “어처구니 없다(ridiculous)” “제정신이 아니다(insane)”라고 표현했다.
□국민 안전과 집회의 자유는 모두 헌법적 기본권이라, 차벽이 과도한지 아닌지 판단은 일률적이지 않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집회 때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싼 것을 “행동자유권 침해”라며 위헌이라 본 반면, 2017년 대법원은 2015년 민중총궐기 차벽에 대해 “다른 수단이 없었다”며 합법으로 판단했다.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 대유행을 목격한 이상 2020년 차벽과 펜스도 명분은 없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재인산성’ ‘리디큘러스’같은 말을 듣는 것은 아이러니다. 방역 방해 행위를 제재할 근거를 하필 테러방지법에 두겠다는 법 개정안도 그렇다. 그렇게 방역에 절대적 우선권을 둔다면 정부는 중국 봉쇄부터 했어야 했다. K방역의 자긍심은 국경을 막거나 도시를 폐쇄하지 않고 시민 협조로 확산을 통제한 데에 있다. 그 자긍심을 생각해서라도 기본권 제한에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