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학자 6명을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에서 배제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이 단체를 '개혁 대상'으로 지목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치권의 학술단체 인사 개입 논란에 아랑곳 없이 예산을 쥐고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장관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학술회의를 행정개혁 대상으로 삼아 "예산과 기구ㆍ정원에 관해 성역 없이 확실하게 보고 싶다"며 운영 전반에 대한 검증을 예고했다. 연간 약 10억엔(약 109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학술회의 운영과 약 50명의 상근자를 둔 사무국 등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정조회장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등의 조직을 거론하고 당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 학술회의를 정부와 분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술회의는 일본의 인문사회ㆍ자연과학 등의 학자를 대표하는 단체로 국가로부터 운영비를 지급받지만 정책 제언 등의 직무는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회원은 210명으로 임기는 6년이며 3년마다 절반씩 교체된다.
정부ㆍ여당이 학술회의 검증 카드를 제시한 것은 국면 전환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술회의 측은 추천후보를 그대로 임명해 온 관행과 다른 결정을 내린 이유를 묻고 있는데, 정부가 답변은 뒷전인 채 여론몰이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임명에 대해 "총합적ㆍ부감적 활동을 시야에 두고 판단했다"는 모호한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난 3,4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결정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이 51%인 반면, '타당하다'는 24%에 불과했다. 자연과학계 중심 93개 학술단체도 정부가 학계 의견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했다.
더욱이 스가 총리는 같은 날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달 결재 직전 자신이 본 것은 99명의 후보명단이라고 말했다. 총리에게 결재를 올리기 전 학술회의가 추천한 105명의 명단에서 6명이 제외됐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학술회의가 제출한 후보명단을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6명을 사전에 제외했느냐'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렌호(蓮舫) 입헌민주당 대표대행은 10일 "명단을 보지 않고서 총합적ㆍ부감적 판단을 하지 말라"며 "(정부 설명이) 모순투성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임명에서 배제된 오카다 마사노리(岡田正則) 와세다대 교수(법학)는 "총리가 (105명의) 명단을 안봤다면 학술회의 추천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임명했다는 것"이라며 "일본학술회의법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총리 결재 이전 누군가가 추천명단에서 일부를 제외한 것도 총리의 임명권과 학술회의의 심사 권한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이번 논란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6일 온라인에 올린 사설에서 세계 각국에서 "정치인들이 학문의 자유를 역행하려는 징후가 있다"며 스가 정권의 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 사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