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임신을 한다면

입력
2020.10.09 18:00
22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3년여 전 ‘페미니스트’ 약속한 문 대통령
‘낙태죄 존속안’으로 여성 인권 외면해
여성의 눈으로 보겠다는 의지 어디 갔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페미니즘 잡지 ‘미즈(Ms.)’를 창간한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78년 미국 사회에 던진 화두다. 스타이넘은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분명 부러움의 대상,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정치가들의 월경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으려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의사들도 월경통을 더 많이 연구하며, 연방정부는 월경대를 무료로 배포할 것이다.”

이 ‘미러링’의 고전을 42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면? 아마 이런 답이 더해질 것이다.

‘국가가 임신 중단의 가부를 정하는 나라도 있나. 낙태하려고 임신하는 남성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임신중단권이 전면 보장된 지 30년. 정부는 20년 전부터는 임신중단 수술과 약물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임신중단휴가제를 도입해 남성의 건강권을 지키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은 여성, ‘무슨 소리야’ 한다면 남성일 가능성이 많다. 이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지 알고 싶다면,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대입해보면 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다른 게 아니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노력이다. 대선을 석 달 앞둔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말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말에 공감합니다.” 2017년 2월 16일, 포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에서다.

차라리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실망이 덜할까. 3년 5개월간 문재인 정부의 평등과 공정, 정의엔 여성이 없었으니 하는 얘기다. 그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젠더폭력에 더 이상 눈 감고 쉬쉬해선 안 됩니다. 가해자를 단호히 처벌해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보호해야 합니다.”

그랬던 대통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모친상 장례식장에 ‘대통령 문재인’이 또렷이 박힌 조화를 보냈다. 지위를 권력 삼아 비서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그에게 ‘나는 당신과 함께 한다’는 신호를 보냈고 한국 사회 전체에 송출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국가 최고 권력이 보호하는 건 과연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문 대통령 머릿속 ‘젠더’는 여성과 남성뿐 아닌지 의구심도 지울 수가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의지를 드러냈고, 변희수 전 하사 강제 전역이 국제인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엔의 지적엔 ‘성전환 병사는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답했다. 모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그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존재하는 게 정치인데, ‘유체이탈 화법’으로 방관할 거라면 정권을 왜 잡은 건가.

1년 6개월 장고 끝에 내놓은 ‘낙태죄 존속안’은 이 정부의 시선을 가늠할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여성 대다수가 정확히 알아채기 어려운 임신 주수를 들이대 그것도 고작 14주를 허용 기준선으로 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임신 24주가 넘어가면 어떤 사유가 생겨도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이 개정안은 존재의 본질을 건드린다. 신체조차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게 하는 아이러니의 총체다. 여성의 몸을 국가에 조건부로 종속시키는 법안을 내는 정부가 여성 인권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3년 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약속한 그날, 문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과연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생각해봤습니다.” 겸양의 표현이자, 반어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보니, 맞다 싶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여성 몇 명을 장관에 앉힌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수사는 저잣거리 유머를 넘어 기만의 상징이 될 테다.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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