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묵은 한 푼다"…제주 4ㆍ3 생존 수형인 8명 정식 재판 받는다

입력
2020.10.08 11:45
불법 군사재판 관련 두 번째 재심 
일반재판 수형인도 처음으로 포함


제주 4ㆍ3 당시 불법 군사재판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ㆍ3 생존 수형인 8명에 대한 재심 재판이 열린다. 지난해 1월 4ㆍ3 생존 수형인 18명이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 판결과 형사보상 결정을 받아낸 데 이어 두 번째로 이뤄지는 재심 재판이다.

제주법원 제2형사부(부장 장찬수)는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송순희(96) 할머니 등 7명에 대한 재심 청구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재판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던 김두황(93)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일반재판에 의한 생존 수형인 재심 개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22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불법 군사재판으로 수형생활을 했던 재심 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군법회의가 재심 청구인들의 재판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형인 명부에는 청구인의 이름과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형량까지 적시돼 있다. 이를 조작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당시 사법적 판단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 청구 요건을 인정했다.

군사재판 수형인은 송순희 할머니를 비롯해 김묘생(92) 할머니, 김영숙(90) 할머니, 김정추(89) 할머니, 장병식(90) 할아버지 등이다. 변연옥(91) 할머니와 송석진(93) 할아버지는 재심 결정을 보지 못하고 지난 3월과 7월 각각 고인이 됐다.

재판부는 일반재판으로 수형생활을 했던 김두황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불법 구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해 재심 사유를 받아들였다. 김 할아버지는 군사재판을 받았던 다른 생존 수형인들과 달리 1948년 11월 경찰에 체포돼 1949년 4월 11일 일반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김 할아버지는 영장 없이 불법 구금돼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고 총으로 협박을 받는 등 고문을 받았다. 허위자백을 하지도 않았지만 재판에서는 변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이후 목포형무소에서 10개월간 형을 살고 1950년 2월 출소했다. 그는 70여년 지난 후에야 폭도들을 지원했다는 날조된 근거로 국방경비법 위반이 적용돼 옥살이하게 됐음을 알게 됐고,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증인과 자녀의 증언이 청구인의 진술과 대부분 일치한다. 청구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만큼 당시 수사기관의 불법구금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으로 이들 생존 수형인은 정식 재판을 받게 됐다. 앞서 지난 2017년 4ㆍ3 생존 수형인 18명이 제기했던 제1차 재심 재판은 지난해 1월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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