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역사 고스란히... 한 세기 전 '레트로' 감성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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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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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인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

떠나고 싶은 계절,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는 복고주의(레트로) 감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목적지가 될 수 있다. 1980~90년대, 한 ‘세대’ 전 복고가 아닌 구한말의 한 ‘세기’ 전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개항장은 외국인 내왕과 무역을 위해 개방한 제한지역을 말한다. 지금의 신포동과 동인천동, 북성동 일대가 그곳이다.

1883년 외부에 항구를 개방한 인천은 부산(1876년)과 함경도 원산(1880년)에 비하면 개항이 늦었다. 그러나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탓에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은 개항장 곳곳에 자신들의 은행과 영사관, 우체국 등을 지었다. 1899년 일본이 만든 제1은행 인천지점(현 인천개항박물관), 경술국치 2년 전인 1908년 일본인들이 산허리를 잘라 만든 홍예문, 일제의 통신권 강탈 상징이던 인천우편국(1923년 신축, 최근까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사용), 자유공원 등이 대표 흔적들이다. 자유공원은 서울 파고다공원(1897년)보다 몇 년 앞서 조성돼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공원이다.

10년 전 인천시가 이 지역을 ‘개항장 문화지구’ 지정, 보다 말끔하게 단장한 이곳으로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짜장면 발상지인 중국요리집 '공화춘(1983년 폐업)' 자리에 들어선 짜장면박물관, 한중문화관과 아트플랫폼, 개항박물관, 중구청,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홍예문, 자유공원 등 레트로 감성 유발 아이템들이 축구장 75개 면적(53만㎡)에 펼쳐져 있다.


축구장 75개 면적에 평쳐진 개항 역사

인천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 수인선의 종착역이다. 수도권 전철역사 중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하다. 비둘기호가 경인선을 달리던 1960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엔 큰 역이었지만, 지금은 간이역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곳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차이나타운 초입이다.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를 지나 차이나타운이 아닌, 중구청 방향(우측)으로 틀면 개항장 거리가 보인다. 작은 일방통행로와 근대건축물들이 어울려 있는 개항장 거리 일대는, 주차된 차량만 없다면, 드라마 세트장으로 착각할 정도다.

가장 먼저 보이는 짜장면박물관은 화강암 석축 위에 지어진 2층짜리 벽돌 건물이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공화춘(共和春)'이라고 적힌 간판이 인상적이다. 이 박물관 인근에는 13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과 대불호텔 전시관이 있다. 경계계단은 1883년 설정된 일본 조계(외국인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와 1884년 청국 조계의 경계로, 좌측에는 중국식, 우측에는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불호텔 전시관은 조선 최초 호텔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재현된 대불호텔 객실과 연회장도 있다.

그 옆으로는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과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이 나란히 서 있다. 각각 인천개항박물관과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들 건물은 인천시 유형문화재다. 고종 광무 3년에 지어진 석조건물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과 그보다 한해 늦은 1890년 문을 연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세운 것들이다. 아픈 역사의 시발점이 됐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건축양식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천개항박물관은 인천항을 통해 처음 소개된 근대문물과 경인철도 유물, 개항기 금융기관 자료 등을 전시 중이다. 근대건축전시관에선 근대 초기 건축물과 소실된 근대건축물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지난 6일 오후 박물관 앞에서 만난 공연예술가 김선혁(30ㆍ서울 거주)씨는 "’인천 중구’ 하면, 차이나타운과 중국 요리만 떠올렸는데, 바로 옆에서 색다른 분위기의 개항장 거리를 접하고 신기했다"며 “역사문화해설사로부터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고 말했다. 개항장 거리에 다닥다닥 붙은 낮은 건물들에서 ‘이국적’이라는 느낌 정도만 받았던 김씨는 해설사 이야기를 듣고 그것들이 일본의 가옥 형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서양과 일본의 건축 양식을 섞어 지은 2층 벽돌 건물인 인천우편국과 제물포에 살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외국인들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1883년 지어진 '제물포 구락부(클럽)'은 이후 일본재향군인회관, 미군 장교클럽,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문화원으로 계속 옷을 갈아입었다. 현재의 중구청사는 1985년 전까지는 인천시청으로 활용되던 곳이고, 그 이전에는 일제가 침탈을 위해 설치한 지방기관 ‘이사청’과 영사관으로 쓰던 건물이다.

박춘화 중구 역사문화해설사 회장은 "개항장 거리에는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했던 개항 당시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부산과 원산도 있지만, 인천은 서울을 가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이 거쳐간 곳이라서 점에서, 짜장면 등 ‘우리나라 최초’ 타이틀을 가진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세기 전 레트로 감성 물씬

개항장 거리와 주변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 신포문화의거리 등에선 공방 30여곳과 카페 80여곳, 뮤직클럽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차이나타운이 '핫플레이스'로 뜬 뒤 들어선 곳이 적지 않지만, 개항장 거리만의 '멋'에 묻히기 위해 자리를 잡는 곳도 적지 않다. 공방과 갤러리를 겸한 카페 서니구락부의 김선희 대표는 "이곳의 운치가 마음에 들었고, '이곳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2009년 카페를 겸한 공방을 열었다”며 "거리 자체가 박물관인 이곳의 묘한 매력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일본 조계지였던 중구청 앞에는 일본풍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일제 때 지은 근대건축물과 최근에 꾸며진 근대식 건축물, 조형물이 혼재돼 있다. 조성 당시 ‘일본풍의 거리를 복원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찾으면서 그 논란은 잦아든 상태다. 개항 이후 인천에는 점포가 함께 딸린 마찌야(町家) 형식(목조 2층의 일본 전통 도시주택)과 나가야(長屋) 형식(1층 목조) 주택이 대거 들어섰다. 1930년대 이후에는 서양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은 일본의 문화주택이 곳곳에 세워졌고 현재도 관동과 신흥동 일대에 여러 채가 남아있다.


개항장 거리에는 1940~60년대 문을 연 유서 깊은 가게들도 곳곳에 있다. 여심을 숱하게 자극했던 '구슬꽃신'으로 유명한 의흥덕 양화점(1946년 개점)과 동인천의 터줏대감 삼강설렁탕(1946년), 꿀설기로 유명한 성광방앗간(1947년), 공갈빵의 시작인 복래춘(1951년), 60년의 시간을 담은 문방구 칠성문구사(1961년), 옛 감성에 젖어 술 잔을 부딪힐 수 있는 신포주점(1968년)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건축물을 사들여 전시장, 공연장, 공방 등으로 조성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아트플랫폼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으로 유명한 자유공원, 백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낸 창고를 활용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 높이 13m, 폭 7m의 석문 홍예문 등은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 촬영 배경이 되기도 했다. 개항장 거리는 2시간 정도면 대충 둘러볼 수 있다.


'인천 중구=차이나타운' 잊어라

붉은 간판과 홍등으로 물든 차이나타운은 개항장 거리와 한 몸을 이룬다. 130년 가까이 화교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한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은 상인들, 복원된 중국식 근대건축물, 짜장면과 공갈빵, 월병, 중국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박춘화 회장은 "인천 차이나타운은 이주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서울 구로, 경기 안산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성화돼 있는 차이나타운"이라고 말했다.

개항장 거리에서 가까운 신포국제시장은 인천 최초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역사가 100여년에 이른다. 중국인 화농(華農)들이 일본인 고객에게 채소를 팔았던 19세기 말 시장 풍경을 짐작해볼 수 있는 푸성귀 시장 조형물이 시장 내 쉼터에 조성돼 있다.

송월동 동화마을도 개항장 거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2013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세계명작동화를 주제로 마을 전체에 색을 입히고 조형물이 설치되면서 관광객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전래동화길 등 11개의 테마길과 트릭아트(입체그림) 전시장도 있다. 그러나 관 주도로 조성 사업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과 '주차 갈등' 등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개항장 거리가 더 의미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선 현재의 모습은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변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한 식당 대표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개항장 거리 분위기가 반감된다고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며 “개항장 거리 외곽에 공영주차장 확대와 함께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희 대표는 "트램(노면전차)을 설치해 운용한다면 개항장 거리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이라며 “트램이 깔린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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