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행사라서 믿었는데... 문체부 주최 공모전도 저작권 갑질

입력
2020.10.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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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지침엔 "공모전 저작권 응모자에 귀속" 
그러나 정작 자신들 주최행사 지침 준수율 48%

지난해 취업을 위한 경력(스펙)을 쌓기 위해 공모전을 찾아보던 대학생 A씨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제1회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활용 공모전'에 관심을 가졌다. 응모자에게 창작물 저작권을 부당하게 빼앗는 민간 공모전이 만연한 현실이지만, 정부가 주최한 행사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이 공모전 규정에서 "출품작의 저작권은 한국문화원연합회(행사 주관 주체)에게 있다"는 문구를 보고 나선, 정부 주최 행사도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A씨는 "공모전의 저작권 갑질을 감시해야 할 정부 부처가 정작 공모 참가자의 저작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을 버젓이 규정에 내걸고 있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창작물 저작권을 독점하는 민간기업 공모전의 불공정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주최한 공모전마저도 창작물 저작권을 주최 측에 귀속시키는 '갑질 조항'을 버젓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2017~2019년 문체부 및 문화재청 소속ㆍ유관기관들의 창작물 공모전 저작권 귀속 실태점검' 자료에 따르면 총 177건의 공모전 중 출품작의 저작권이 응모자에게 귀속된 경우는 절반도 안 되는 85건에 불과했다. 문체부와 문화재청의 저작권 지침 준수율은 48%(74건), 44%(14건)에 그쳤다.

문체부 주최 공모전 행사의 이런 저작권 갑질은 문체부 스스로 만든 지침을 어긴 것이다. 문체부가 2014년 발간한 ‘창작물 공모전 지침’에는 "공모전 출품작의 저작권은 저작자인 응모자에게 귀속된다"며 "주최 측이 입상한 응모작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응모자에게 필요한 범위 내 이용을 허락받거나 별도의 저작재산권 양도에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문체부나 문화재청은 공모전 응모자에게 저작권 포기를 강요하는 등 해당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문화재청 소속기관에서 진행한 '가야역사문화센터 건립공사 건축설계 공모'에는 "당선작의 법적 소유권은 주최자에 귀속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고, 지난해 문체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역시 "수상자에 한해 주최자가 저작재산권 등을 갖는다"는 조항을 언급하고 있다. 같은 해 열린 '대한민국 관광사진 공모전' 등 주요 공모전들도 마찬가지로 지침을 어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정주 의원실에 따르면 특히 스포츠 분야 공모전의 지침 이행율이 유독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ㆍ관광ㆍ콘텐츠 관련 공모전에서는 총 124건 중 절반이 조금 넘는 69건이 지침대로 응모자에게 저작권을 귀속한 반면, 스포츠 관련 공모전에서는 전체 28건 중 14%에 불과한 단 4건만이 지침을 따랐다.

이밖에 저작권 귀속 대상을 응모자 등으로 설정해 놓은 뒤, 정작 모집요강 특이사항에 주최자의 창작물 독점권을 언급한 사례도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2018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귀속 여부를 '일부 귀속'이라고 표기하면서도 특이사항에 '주최 및 주관기관은 출품된 모든 작품을 사용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포함했다. 이외에도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광정책국 등 다수 부처의 공모전에서 귀속 대상을 '응모자'라고 해놓고는 특이사항에 저작물에 대한 주최자 권리를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 측은 "저작권 관련 공모전 지침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지침이 권고 수준이라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유정주 의원은 "창작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주무부처부터 지침 마련 취지를 지켜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기업 저작권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및 홍보에도 더욱 힘을 쓰는 등, 지침 이행을 위한 문체부의 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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