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가 실종 당일 새벽 4시까지 정상 근무를 했다고 당직일지에 서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종 당일 새벽 1시35분쯤부터 행적이 묘연했다는 동료들 증언과 배치된다. 다만 당직일지에 기록된 필체가 달라 대리 서명 가능성이 크다. 사건 당일 어업지도선의 복무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6일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 받은 '무궁화 10호'의 당직일지를 살펴 보면, A씨 실종 후 긴박했던 선박 내부 상황이 담겨 있다. 무궁화 10호는 A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이다.
무궁화 10호의 9월21일자 당직 일지에는 '오전 4시 선내외 순찰 결과 이상이 없다'는 A씨의 서명이 기록돼 있다. A씨는 사건 당일 당직사관이었다. 당직사관은 어업지도선 복무규칙상 당직일지를 기록하고 당직이 끝난 후 이상 유무를 선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는데, 기록이 맞다면 A씨가 실종 당일 새벽까지 정상 근무를 한 것이 된다. 그러나 정부 당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명 필체가 A씨의 것과 달라 대리서명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동료들이 A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시간도 21일 오전 1시35분쯤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복무 규정만 제대로 지켜졌다면, A씨 실종 사실을 보다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A씨 동료들이 실종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은 21일 오전 11시31분이다. 마지막 목격 후 10시간 가량 지난 후다. 당직 일지에는 "B주무관이 전화를 하였으나 전화가 꺼져 있어 A씨 방을 확인했고, 4분 뒤 전 직원이 선내 수색을 실시했다"고 적혀 있다.
이 때부터 무궁화 10호는 발칵 뒤집혔다. A씨를 찾느라 분주했던 정황이 10여분 단위로 빼곡히 기록돼 있다. 동료들은 21일 오전 11시50분 A씨 실종 사실을 최종 확인해 해수부 소속 어업지도과장에게 구두 보고했다. 21일 12시25분 선박 우현 선미에서 A씨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발견됐다. A씨가 선박을 이탈했을 가능성이 커지자 무궁화 10호는 자체 고속단정 2대를 내려 해상 수색에 나섰다.
A씨가 바다에서 실종됐을 가능성에 해양경찰과 해군도 수색에 가세했다. 21일 오후1시 해경 502함은 해군에 실종자 수색 협조를 요청했다. 이날 무궁화10호를 비롯한 국가 어업지도선 3척, 시ㆍ군 어업지도선 2척, 해군 함정 1척, 해경 함정 2척이 탐조등을 활용한 밤샘 야간 수색을 벌였지만 이씨를 찾지 못했다.
A씨 실종 하루가 지난 9월22일에도 수색 작업은 계속됐다. 이날에는 국가지도선 4척, 시ㆍ군지도선 2척, 해군 1척, 해경 3척 등 총 10척의 배가 동원돼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졌다. A씨 형인 이래진씨도 22일 오전 10시15분쯤 무궁화 10호에 승선에 수색을 참관했다고 당직일지에 기록돼 있다.
22일 오후 5시 5분 해군작전사령부에서 무궁화 10호에 유선으로 연락해 '구명동의(구명조끼)의 종류와 색, 수량 파악'을 요구해왔다. 군이 A씨가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측에 발견된 것을 파악(오후4시40분)한 후 구명조끼를 입은 것으로 보고, 무궁화10호에 관련 내용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22일 오후 9시40분쯤 A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처음 의심했지만, 무궁화10호는 23일에도 수색활동에 집중했다. 당시엔 수색 작업을 담당했던 이들에게 A씨 사망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3일 오전 7시10분쯤 해군이 해상을 떠돌던 변사체를 발견했고, 잠시 A씨로 추정돼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오전 7시48분쯤 A씨 가족과 해경의 조사 결과 A씨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은 해당 변사체가 한국인으로 확인되지 않자, 중국에 신원 확인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