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의 추억, 궁평항 일몰, 매향리 아픔까지...화성 포구 기행

입력
2020.10.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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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항에서 매향리까지...서울에서 가까운 화성의 바다

신도시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화성에서 서해 바다는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휴식처다. 안산과 평택 사이, 전곡항에서 매향리까지 화성의 포구는 작지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도시의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일상에 지친 수도권 주민들이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안산 대부도 바로 아래 전곡항에는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하얀 요트가 어깨를 맞대고 정박해 있다. 파도가 적고 썰물 때도 수심이 3m 이상 유지돼 수상 레저에 적합한 지형 덕에 전국 최초로 레저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항구다. 입파도 도리도 국화도 육도 풍도 등 가까운 바다의 섬들을 돌아오는 다양한 코스의 요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전곡항에서 조금 내려가면 제부도다. 서신면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썰물 때면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갈라져 섬으로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바닷길 초입에 입도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길이 열렸다고 무작정 차를 몰지 말고 물때에 맞춰 나올 시간을 계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다열림길’ 초입에 제부도 워터워크(Water walk)가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계단으로 전망대이자 설치작품이다. 썰물 때보다는 물에 잠겨 있을 때 오히려 작품성이 돋보인다.

제부도는 전체가 추억 쌓기 관광지다. 섬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도로가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제부항, 왼쪽으로 가면 갯벌체험장이다. 제부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빨간 등대가 반긴다. 방파제 끝 등대에서 해상낚시터(피싱피어)가 연결돼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철제 구조물로 여행객이 쉬어가도 좋은 곳이다. 마주보고 있는 대부도 사이 바닷길로 미끄러지는 요트가 한 폭의 그림이다. 모두 전곡항으로 드나드는 요트다. 제부항에서 남쪽 방향으로는 800m 해안산책로가 이어진다. 전체 구간이 계단 없는 목재 덱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군데군데 쉼터와 의자를 설치해 하염없이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난간 곳곳에 설치한 조형물은 감성 사진 찍기에 좋은 멋진 소품이다. 좀 더 시원한 풍광을 즐기고 싶다면 탑재산(66.7m) 정상으로 연결되는 제비꼬리길을 선택하면 된다.




해안산책로가 끝나는 곳부터 약 1.8km 해변이 이어진다. 해안도로로 이동해도 되지만 단단한 모래 해변을 걸으면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섬의 남쪽 끝에 닿으면 몇 개의 바위섬(매바위)이 또 단단한 바닷길로 연결돼 있다. 매바위 일대는 갯벌체험장이다. 인근 상가에서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서해바다 어느 곳이나 일몰 풍광이 아름답지만, 궁평항은 화성에서 특히 낙조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크고 작은 어선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포구를 중심으로 북측에는 해안산책로가 남측에는 해상낚시터가 조성돼 있다. 해안산책로는 주차장에서 해수욕장까지 약 300m 로 짧지만 제부도와 마찬가지로 철제 구조물 위에 전 구간이 목재 덱으로 덮여 있다. 산책로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광도 멋지지만, 산책로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낙조도 일품이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수산시장도 갖춰져 있다. 포구는 작아도 싱싱하고 맛있는 해산물이 가득한 곳이다.


궁평항에서 화성방조제를 건너면 현대사의 아픔이 서린 매향리다. 매향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부터 2005년까지 주한 미 공군의 사격 훈련장이었다. 훈련 기간에는 바로 앞 농섬을 표적으로 하루 400회 이상 포격이 실시돼 만선의 기쁨을 누려야 할 바다와 마을에는 굉음과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소음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옥에 균열이 가고, 오폭으로 사람이 다치는 일까지 발생하자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1989년부터 훈련 중지를 요구하며 줄기찬 투쟁을 벌였다. 마침내 2005년 사격장이 폐쇄되고 그 자리에는 최근 ‘화성드림파크’라는 이름으로 유소년 야구장이 들어섰다. 인근에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을 조성 중이다.




야구장 뒤편 언덕에 매향리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매향리 역사기념관’이 있다. 굳이 내부 전시물을 둘러보지 않아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기념관 마당에는 팔뚝만한 것부터 수백kg에 이르는 포탄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옥상과 정원에도 실제 포탄과 탄피로 만든 설치작품이 가득하다. 마을로 이어지는 골목길엔 농섬에서 건져 온 대형 포탄이 담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군은 훈련장 명칭을 쿠니(Koo-Ni)사격장이라 불렸다. 매향리의 옛 지명인 고온리(古溫里)를 잘못 옮긴 이름이다. 예부터 사람 살기 좋은 따뜻한 고을이었다는 뜻이다. 농섬이 코앞에 내려다 보이는 고온항에는 전망대 겸 쉼터 건물이 들어서 있다. 물이 빠지면 ‘농섬길’을 따라 구비섬, 농섬, 웃섬까지 바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 돌아보는 길이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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