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시민의 자발성에 빚 지고 있는 정부, 도서정가제 지켜야”

입력
2020.10.06 17:18
한국출판인회의,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토크 행사서 
작가 70%  "도서정가제 현행 유지 또는 강화돼야"


“이 정부는 시민의 자발성에 빚을 지고 있는 정부 아닌가요. 우리 사회를 힘 있게 끌고 가고 있는 시민들의 성찰 능력과 자발성의 씨앗을 자라나게 한다는 점에서,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반찬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하려 들면 참 어렵죠. 도서정가제도 마찬가지에요.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숫자는 숫자로만, 문화는 문화로만 격리되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정부는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가는 건가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한강과 시인 박준, 두 사람이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악 움직임에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6일 한국출판인회의가 개최한 '작가와 함께하는 도서정가제 이야기' 라이브 방송에서다. 11월 20일로 다가온 도서정가제 개정 시한을 앞두고 문체부가 완화 방안을 강행하려 들자 출판계가 반발한데 이어, 작가들까지 정부 비판 대열에 가세한 것.

한강 작가는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도서정가제를 후퇴시키는 건 모두의 이익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개악이 됐을 경우 이익을 볼 사람은 아주 소수일거라 생각한다"며 "반면 많은 작은 사람들,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책의 재고를 처리하고 싸게 살 수 있어 좋을 지 모르지만, 잔치는 금방 지나가고, 태어날 수 있었던 책의 죽음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될 것"이라며 "최대 피해자는 독자들과 독자가 될 수 있는 어린 세대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준 시인 또한 도서정가제가 출판계를 보호하고 책의 특권을 부여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출판계는 하나의 숲이다. 최상의 포식자와 가장 약한 식물들이 함께 사는 공간인데,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작동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 숲은 숲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저마다 경쟁의 논리가 있는 것”이라며 “도서정가제가 우리 사회의 더 울창한 숲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출판인회의가 공개한 작가 대상 도서정가제 여론조사 결과, 작가의 70%가 현행 유지(39.7%) 또는 강화(30.2%)의 뜻을 나타냈다. 도서정가제가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47.1%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33%)보다 더 많았다. 도움이 되는 부분을 중복 응답으로 조사한 결과 '가격 경쟁의 완화'(62.8%)가 가장 많았고 '작가의 권익 신장'(58.5%), '동네서점의 활성화'(54.8%), '신간의 증가'(31.7%), '출판사의 증가'(18%) 등을 꼽았다. 도서정가제로 신간 출간에 도움을 받았다는 의견도 43%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33.9%)보다 많았다. 이 조사는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 3,500명 중 1,135명에게서 답변을 받은 결과다.

출판인회의는 "도서정가제가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출판계 전체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 왔다는 한국작가회의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며 "창작자들도 도서정가제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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