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베트남이 유럽 강대국을 우군으로 만들면서 강경론으로 더 기울고 있다. 반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필리핀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5일 VN익스프레스 등 현지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베트남은 최근 영국 및 독일과의 개별 대화에서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법에 기초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끌어냈다. 영국과 독일은 특히 베트남이 강조하고 있는 '중국-아세안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했다. 영국은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이 바다의 범위와 주권 등을 결정하는 근거"라며 "해양법협약과 COC를 통한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독일도 "해양법협약 등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 유지와 COC 등을 통한 평화적 분쟁 조율만이 해결책"이라며 베트남에 힘을 실었다.
베트남이 여론전을 통한 COC 협상 테이블 마련에 속도를 내는 건 올해를 남중국해 문제 해결의 마지노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올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은 COC 협상과 관련해서도 1차 모니터링 역할을 맡고 있다. 발언권이 가장 강한 올해에 중국을 협상장에 끌어내지 못한다면, 친중 성향의 미얀마 등이 COC 모니터링 역할을 맡을 내년 이후엔 우호적인 협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또 다른 당사국인 필리핀은 역내 외교무대에선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대중 강경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붕괴로 고민이 깊은 상황에서 올 상반기에만 필리핀 내 대형 프로젝트 투자액을 26.5%나 늘리기로 한 중국에게 강경일변도로 가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지에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모종의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해리 로크 대통령궁 대변인은 "양국 정상 간에 '무역과 투자 등 양국이 진행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화는 있었다"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