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北 김여정...'공무원 피격' 책임 거부 메시지?

입력
2020.10.02 12:3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두 달여 만에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의 수해 복구 현장 시찰 자리에 동행하면서다.

공무원의 서해 피격 사건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대남 정책 총괄 격인 김 제1부부장을 등장시킨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2일 김 위원장이 강원도 김화군의 수해 복구 현장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일정을 하루 늦게 보도하는 관행을 고려했을 때 이날 시찰은 1일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김 제1부부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러장 공개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김 제1부부장은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둘러보는 오빠 김 위원장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대남 총괄 김여정 60여일만에 재등장


김 제1부부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7월 27일 보도된 노병대회 참석 이후 66일만이다. 김여정은 지난달 30일쯤 열린 정치국 회의 등 정치국 다른 정치국 후보위원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잠행'해온 김 제1부부장이 현 시점에 등장한 것은 최근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여정은 대남 정책의 총괄 격인 점에서 공무원 피격 사건 책임 당사자"라면서 "이 시점에서 김여정을 등장시킨 것은 이번 사건 처리에 대한 북측의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6월 발생한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대남 담화를 내며, 대남 정책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했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도 당시 담화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라고 소개하는 등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대남 정책 지휘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을 공식화한 상태다.

"피격 사건 '책임 추궁 없다'는 대남 메시지"


따라서 북한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대남 정책 총괄 격인 김 제1부부장도 주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반면 이날 김 위원장의 현장 시찰에 그가 버젓이 등장한 것은 결국 북한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통전부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당시 경위와 관련, "정장의 결심 밑에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 향해 사격했다"면서 사건 당시 지휘 책임을 고속정 정장에게 씌운 상태다. 이번 사건에 대한 남측과 국제사회의 여론이 격앙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추가적으로 내부 책임자를 처벌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되레 김 제1부부장의 건재함을 드러냈다. 더이상의 책임 추궁은 없다는 남측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내부 책임을 물었다면, 김여정은 지금쯤 근신하고 있어야 할 시점"이라면서 "되레 김여정의 건재함을 드러낸 것은 이번 사건이 더이상 문제 시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김 위원장의 공식 사과를 담은 통전부의 통지문을 보낸 뒤 이번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공동조사를 공식 요청(지난달 27일)한 데 대해서도 닷새째 별다른 공식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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