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제재, ARM 매각…복잡한 한국 반도체 손익계산서

입력
2020.09.30 13:00
수출 물량 감소...단기 타격 불가피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 역전 기대 
엔비디아, ARM 인수 성공하면 
경쟁사로 급부상..."대변혁 찾아올 것"


중국 ‘반도체 굴기’의 중심 축인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에 손발이 묶이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당장 화웨이라는 거대 고객을 잃게 됐다. 미ㆍ중 양국의 패권 다툼이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국내 기업으로 불똥이 튄 것이다. 여기에 미국 엔비디아가 반도체 설계 부문의 ‘공공재’ 역할을 해온 ARM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손익계산서 짜기에 분주하다.

3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 15일부터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못하고 있다.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한 세계의 전 반도체 기업은 미국 상무부의 사전 허가 없이 화웨이에 제품을 팔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당장 4분기 실적 악화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버용 D램 고정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기업의 VIP 고객인 화웨이와 거래가 중단되면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 가운데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2%(약 7조3,000억원), 11.4%(약 3조원)로 추산된다. 이번 화웨이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연간 10조원의 시장이 날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웨이 물량 감소 때문에 단기적으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화웨이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호재일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간 만만찮은 도전자로 인식돼 온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지연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요 감소를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판매 증가로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실제 스마트폰의 경우 화웨이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위협적인 경쟁사였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화웨이는 스마트폰 세계 시장 점유율 20.2%로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0.0%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제재 때문에 이 수치는 금세 재차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올해 스마트폰 1억9,200만대를 생산한 화웨이가 내년에는 그의 절반도 못 미치는 제품을 출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만은 아니다.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 글로벌 반도체 시장 환경이 전부 예측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화웨이가 반도체 수급에 차질을 빚어 고급 휴대폰 생산을 멈추게 되더라도, 중국인들은 오포와 비보, 샤오미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해당 기업들까지 추가 제재 범위 안에 넣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인 미국의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영국 ARM 인수에 성공할 경우 반도체 업계는 또 다른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ARM이 엔비디아에 인수된 뒤 설계도 라이선스 비용을 급격히 올리거나, 설계도 공급을 중단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경우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한다.

엔비디아가 ARM을 기반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 진출하면 퀄컴, 삼성전자의 경쟁사로 부상하게 된다. 반도체 업계의 거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GPU 시장을 뛰어넘어 인공지능(AI)와 사물인터넷(IoT), 중앙처리장치(CPU)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깔린 것”라며 “반도체 시장에 대변혁이 찾아오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업계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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