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서해 소연평도 북한 해상에서 발생한 실종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공식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통일전선부 명의로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과는 남측 규탄 성명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만에 나왔다.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2008년 박왕자씨 총격 사망 사건 때 우발적 사고임을 주장하면서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던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조치이다. 이번 사태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로 규정하고,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 경계 감시 근무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한 부분도 우리 측 요구에 나름 성의를 보인 대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통지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책임 인정이 모호해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북측은 ‘해상 경계 근무 규정이 승인한 준칙’ ‘국가 비상 방역 규정’ 등의 표현을 쓰면서 총격이 마치 적법 규정에 따른 행위처럼 기술하고 있다. ‘단속 과정의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라는 표현도 책임을 부인한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썼다”며 유감을 표한 대목은 적반하장이나 다름 없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할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혹시라도 북측이 통지문 한 장 달랑 보낸 걸로 이번 사태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당장 남측은 시신이 훼손된 걸로 파악한 반면, 북측은 시신을 찾지 못했고 부유물만 태운 것이라며 주장해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월북 시도도 규명할 대목이다. 북측은 말로만 사과할 게 아니라 남북 공동 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마련 등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우리 정부도 통지문 하나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지금은 특사나 친서 교환 등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섣부른 기대나 계획을 언급할 때가 아니다. 북측의 경위 설명, 사과와 유감 표명, 재발 방지 내용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 살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북측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