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잔인한 코로나 대응...남북관계도 안하무인

입력
2020.09.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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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 "해군 지휘계통 지시 있있던 것으로 판단"
"코로나 방역 위해  국경 접근시 사살명령" 
남북 관계 물꼬 트려는 문재인 정부 노력에 찬물


'서해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으로 북한 정권의 잔인함과 이중성이 또 한번 드러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에 따른 과잉 대응으로 보이지만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사살한 만큼 책임은 불가피하다. 남북관계 표류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22일 오후 3시30분쯤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탑승한 채 탈진한 A씨를 최초 발견했다. 방독면을 착용한 북한 인원이 A씨로부터 표류 경위와 월북 의사를 들은 것으로 우리 군은 파악했다. 북한군은 6시간이 지난 오후 9시 40분쯤 고속정을 타고 돌아온 뒤 A씨를 향해 총을 쏘고 시신을 불태웠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 해군 지위계통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일선 병력의 우발적인 사격이 아니라 북한군 지휘부의 지시에 따른 의도된 피격이라는 얘기다. 군 소식통은 "북한의 서해 해군 사령부에서 지시를 내렸을 것"이라했다.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표류자를 현장에서 사살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것은 코로나 19 대응 조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코로나 대응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사살 명령까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사령관은 지난 1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북한 당국은 중국과의 국경에서 1~2km 떨어진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고 특수작전부대를 보냈는데 무단으로 북중 국경을 넘는 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고 밝혔다. 자유아시아방송 등도 지난달 사회안전성이 "국경 1km 접근 땐 사람이든 가축이든 이유를 불문하고 발포해 사살하라"는 포고문까지 발표했다고 전한 바 있다. 특히 지난 7월 탈북민 김모(24)씨가 서해를 통해 재월북해 국경 경계가 뚫린 것이 확인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노동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경계 소홀을 문책한 것도 북한군의 과잉 대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중 지역에서 밀무역을 하는 주민들이 사살됐다는 첩보가 많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선 즉결 처분도 불사하는 북한 정권의 잔인성과 인명 경시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올 들어 남북 관계를 단절시키며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려는 북한 정권의 안하무인식 대남 대응도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 결렬 후 중재자 역할을 해온 남측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남북 대화를 거부해왔다. 북한은 이번 사건으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려는 남측의 노력에 아예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안하무인 방식이 재연됐다"며 "북한의 전형적인 이중적 태도"라고 꼬집었다.

이날까지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남북 간 연락채널을 모두 끊었고 불리한 상황일수록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성향을 고려하면 북한의 책임 회피는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씨의 월북 의도와 관계 없이 북측이 표류중인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반인륜적 범죄"라며 "북한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남북관계 냉각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외면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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