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공무원 北 피격,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 전에 보고 받았다"

입력
2020.09.24 13:58
정부, 실종자 6시간 방치 논란 
“北 해역인데다 피격 예상 못해”



군 당국이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가 북한군에 피격된 사실을 22일 오후 11, 12시쯤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새벽 유엔 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 선언 공식화'를 제안하기 직전이다.

군 관계자는 24일 “22일 오후 10시쯤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북한군이 A씨를 사격한 후 시신에 기름을 부은 뒤 불에 태웠다”며 “이 같은 사실을 당일 오후 11, 12시에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고,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도 같은 시간 보고됐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A씨는 21일 오전 11시 30분쯤 소연평도 남방 2㎞ 해상 선상에서 신발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22일 오후 3시 30분쯤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부유물에 탑승한 모습이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이 당시에는 불확실한 첩보 수준이었다"며 "부유물에 탑승한 사람을 A씨로 특정한 것은 약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 40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A씨는 북측 선박에 탄 방독면을 쓴 인원에게 월북 관련 진술을 한 것으로 군 당국은 파악했다. 이후 5시간이 지난 오후 9시 40분 북한군 단속정이 A씨에게 접근해 사격을 가했고 이후 오후 10시쯤 방화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로 태운 정황이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장례 절차는 없었고 화장이 아니라 불로 태운 것”이라며 “사격은 북한 상부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헤엄 월북 사건’ 이후인 지난 4일 “국경 1㎞ 접근 땐 사람이든 가축이든 무조건 사살하라”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22일 오후 3시 30분에 포착된 A씨가 6시간 후에 피격 당할 때까지 방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선 “우리 해역이 아닌 북측에서 일어난데다 당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더구나 북한이 사격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사격에 대해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북한군의 민간인 사격이 ‘9ㆍ19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군 당국은 A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추정했다. 군은 “정보 분석 결과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지도선이 이탈할 때 신발을 유기한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점을 볼 때 자진 월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23일 오후 4시 45분쯤 유엔사를 통해 북측에 실종 사실을 통보하고 조속히 내용을 알려달라는 대북 전통문을 보냈으나 현재까지 답변은 없는 상태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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