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확 내렸지만…인천공항 면세점 또 유찰로 새 주인 못 찾아

입력
2020.09.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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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유찰 이어 오늘 재입찰 결과 또 불발
신라ㆍ현대 "코로나에 무리한 베팅 NO"


지난 2월 한 차례 유찰 후 인천공항공사가 '파격 조건'까지 내걸며 인천국제공항의 신규 면세사업권 재입찰에 들어갔지만, 또 다시 불발됐다. 면세업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파로 베팅보다는 몸 사리기로 방향을 튼 신라와 현대가 발을 빼면서 입찰로 나온 면세 구역들이 모두 유찰됐다. 코로나19 전만 해도 24조원으로 세계 1위 면세시장을 자랑하던 한국 면세산업의 허브가 두 차례 연속 유찰되는 사태를 맞았다.

22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롯데와 신세계는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사업제안서와 가격 입찰서를 제출했지만, 신라와 현대백화점은 마감 시한이었던 이날 오후 4시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최소 2개사 이상이 한 구역에 입찰해야 하는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결국 전 구역이 유찰됐다.

이번에 대기업 몫으로 나온 구역은 △2구역(화장품ㆍ향수) △3구역(주류ㆍ담배ㆍ포장식품) △4구역(주류ㆍ담배) △6구역(패션ㆍ잡화) 등 4개다. 원래는 2월 입찰에서 선정된 신규 사업자가 운영해야 했지만, 유찰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해 현재는 기존 운영자였던 롯데면세점이 3구역, 신라면세점이 2ㆍ4ㆍ6구역에서 한 달씩 계약을 연장해가며 운영 중이다.

당초 업계에선 재입찰 흥행을 예상했다. 공사가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으로 느끼는 임대료를 대폭 감면했기 때문이다. 수백억, 수천억원에 달했던 기존 정액제 임대료 방식 대신 지난해 월 여객수요의 60% 이상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물건 판매량의 일정 비율만 내면 되는 영업요율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임대료 최저선도 지난 입찰 당시보다 30% 낮췄다.

바뀐 방식을 적용하면 규모가 가장 큰 2구역 임대료는 1,161억원에서 813억원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구역 절감폭은 100억~200억원으로 예상된다. 입찰 성공 시 운영 기간은 최대 10년이다.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하면 입찰 가치가 상당하지만, 롯데와 신세계만 각각 2개, 1개 구역에 가격 입찰서를 냈다. 3개 구역이 모두 달라 전 구역이 입찰 수 미달이 됐다. 신라면세점은 "코로나19 불확실성이 커 안정적인 경영을 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입찰에서 7구역(패션ㆍ기타) 사업권을 따내 이달 운영을 시작한 현대백화점도 "당분간 신규 점포 안정화에 주력할 것"이란 입장이다.

일각에선 무리한 베팅보단 입찰가가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전략적 유찰 유도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2구역은 면세점 최고 수익을 내는 화장품과 향수 매장들로 구성돼 있어 '빅2'인 롯데와 신라의 싸움이었는데, 둘 다 불참해 자동 유찰되면서 누구도 승자가 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공사 재공고까지는 롯데와 신라가 한 달씩 연장 운영하는 방식이 유지될 수밖에 없고, 재공고에서는 조건이 더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코로나19발 경영 악화가 심각해 베팅보단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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