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인, 11년 만 '성폭력 피해' 고백한 이유

입력
2020.09.22 16:21


가수 장재인이 과거 성폭력으로 인해 겪었던 아픔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장재인은 22일 자신의 SNS에 "감사하다. 앨범은 그 사건을 계기로 시작이 됐다"라며 자신이 과거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임을 알렸다.

그는 "그 이후 나는 1년이 지나 19살에 범인을 제대로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나에게 그렇게 하고 간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분이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그 아이 역시,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인하여 그렇게 됐단 이야기였다. 한겨울 길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 '저 사람에게 그리해오면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약속했던가 보더라"라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이어 "이 사실이 듣기 힘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그 아이 역시 피해자라면, 도대체 나는 뭐지? 내가 겪은 건 뭐지?'라는 생각이 가장 가슴 무너지는 일이었다"라고 말한 그는 ""이젠 조금 어른이 되어 그런 것의 분별력이 생겼습니다만, 돌아보면 그때 '이 일이 생긴 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라며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장재인은 11년 만에 과거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고백한 이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성 피해자들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며 "나는 나와 같은 일을 겪은 가수를 보며 힘을 얻고 견뎠다. 혹시나 아직 두 발 붙이며 노래하는 내가 같은 일,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 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이날 그는 "오늘 참 오래된 앨범의 녹음을 끝낸 기념, 밤잠처럼 꾸준히 다닌 심리치료의 호전 기념 글을 남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던 바 있다.

해당 글에서 장재인은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11년이 걸렸다"라며 "저의 첫 발작은 17살 때였고, 18살에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사건을 계기로 극심한 불안증, 발작, 호흡곤란, 불면증, 거식, 폭식 등이 따라붙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치료를 한다고는 했지만 맞는 의사 선생님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때 당시엔 병원 가는 걸 큰 흠으로 여길 때라 더 치료를 못 했다. 그렇게 이십 대가 된 나는 24살~29살까지 소원이 '제발 진짜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다'였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좋은 생각만 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도 마음 자체가 병이 들면 자꾸만 무너지더라"라고 말했다.

담담한 고백에 나선 그는 최근 자신의 상태가 호전됐음을 덧붙였다. 장재인은 "긴 시간 병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요즘 (나는) 행복을 내려놓았고, 낮은 자존감에 묶일 수밖에 없는 삶을 지나온 걸 인정했고, 무엇보다 일 년간 약을 꾸준히 복용했더니 많은 증상들이 호전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18살에 앨범을 계획하며 내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하기로 다짐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행한 이들을 보고 힘을 얻어서다. 어릴 적에 나랑 똑같은 일을 겪고도, 아님 다른 아픈 일 겪고도 딛고 일어나 멋지게 노래하는 가수들 보면서 버텼다"라며 "'내가 그랬던 거처럼, 내가 받은 그 용기를 내가 조금만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럼 내가 겪었던 사건들도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최악의 상황에도 저를 붙잡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참 맘이 좋겠다' 싶다"라고 새 앨범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유를 밝혔다.

끝으로 장재인은 "잘하는 게 이야기뿐이라 조금씩 앨범과 함께 이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보려 한다"라며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아픔과 불안은 생각보다 많이 닮은 것 같다"라고 덧붙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예고했다.

한편 엠넷 '슈퍼스타K' 시즌 2를 통해 얼굴을 알린 장재인은 이후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고,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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