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국가 무료 접종 일정이 전격 중단된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문제가 된 백신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2주 후 이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백신을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2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사에서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관련 브리핑을 열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플루엔자 백신의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항목에 대한 시험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신은 생물이 생산한 물질로 만든 약품을 뜻하는 ‘생물학적 제제’이기 때문에 2~8도 사이의 저온에서 보관 및 유통(일명 콜드체인)돼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높은 온도에 노출되면 질병 예방 효과가 없는 소위 ‘물백신’이 될 수 있어 식약처가 백신의 안전성 등 품질을 검사하는 것이다.
문은희 식약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백신이 높은 온도에서 보관되면 단백질 함량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은 효과가 약간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문 과장은 또 “효과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는 없는지도 확인하기 위해서 단백질 함량뿐만 아니라 다른 항목에 대해서도 시험을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백신을 폐기하지 않고 사용하려면 상온에 노출된 정확한 시간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노출 시간이 짧다면 사(死)백신인 인플루엔자 백신이 손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 청장은 "인플루엔자 백신은 바이러스를 죽여 불활성화시켜 만든 사백신이어서 홍역이나 수두 백신처럼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넣는 생(生)백신 보다 온도에 덜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느 수준까지 문제가 없을지에 대해선 엄밀하게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시험 결과는 2주 내에 나올 전망이다. 정 청장은 “품질검증하는 데는 길게 잡아서 2주 정도를 보고 있다”며 “어느 정도 검사나 검토가 진행이 되면 2주 전이라도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식약처 조사에서 품질에 문제가 없고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해당 백신이 접종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백신안전 판단이 내려지면 접종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식약처가 의약품 허가와 관리, 유통을 책임지는 기관이기 때문에 식약처 기준을 통과한다면 믿고 접종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되는 백신은 병원, 보건소 등의 의료기관에 이미 공급된 500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 중 일부다. 정부는 신성약품과 독감 백신 1,259만 도즈 공급 조달계약을 맺었는데, 현재 500만 도즈가 의료기관에 공급된 상황이다. 이 중 일부가 냉장차에서 전국에 백신을 배송할 다른 차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됐으며, 정확한 백신 규모 등은 정부가 조사 중이다. 식약처 조사에서 품질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결론나면 이 백신들이 모두 폐기된다.
이에 정부는 아직 유통되지 않고 백신 제조사가 확보 중인 물량부터 의료기관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정 청장은 "제조사가 가지고 있는 물량을 공급해 접종을 시작한 후 이미 공급된 물량은 유통 조사와 품질검사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후 접종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