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동해'(East Sea)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된 국제 표준 해도(海圖)의 사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해도를 제작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 합의안은 오는 11월 열리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한국이 IHO에서 '일본해 표기'를 문제 삼은 이후 23년만의 '성과'다.
21일 외교부에 따르면, IHO는 11월 16~18일 화상으로 열리는 제2차 총회에서 국제표준 해도집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 문제를 논의한다. S-23은 해역을 '이름'으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동해를 일본해라고 명기하고 있다. IHO는 S-23을 기록물로 남기고, 해역을 '식별 번호'(numerical identifier)로 표기하는 디지털 해도를 새로 만드는 방안을 컨센서스(회원국 동의)로 채택할 계획이다.
S-23은 전세계 해도 제작사들의 '표준' 역할을 해왔다. 1929년 초판부터 1953년 3판까지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됐다. 한국 정부는 1997년 IHO 회의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후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쓰거나, S-23을 폐기하자고 주장해왔다. 일본은 일본해라는 이름만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7년 열린 IHO 1차 총회에서 결론에 이르지 못하자, 정부는 남북한과 일본, 미국, 영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협의체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4월과 10월 영국 런던과 모나코에서 각각 두 차례 협상을 열었지만, 일본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집했다. IHO가 중재에 나섰고, S-23을 개정하기보다는 새로운 디지털 해도를 만들자는 데 남북한과 일본이 합의했다. IHO 대다수 회원국은 남북한과 일본의 합의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총회에서 합의안이 무난하게 채택될 전망이다.
'동해 표기 외교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여전히 열세다. 각국이 사용하는 해도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거나 동해만 표기한 비율은 약 40%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일본해' 표기를 단박에 밀어낸 건 상당한 외교적 성과다. 일본은 각국의 '동해 병기'는 막았지만, '일본해'만 인정한 국제표준 해도는 잃게됐다. '한국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IHO의 결정은 한국의 국제사회의 동해 홍보전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동해가 아니라 원래부터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운 S-23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S-23 후속 지도 완성에는 최소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상 모든 바다에 어떤 기준을 적용해 숫자를 붙일 것인지에 대한 회원국 간 논의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