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 후임자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준 강행 의지를 거듭 내비치자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내가 이기면 지명을 철회하겠다"고 맞섰다. 11월 대선 결과는 물론 향후 '문화전쟁'의 향배를 좌우할 핵심 전장이라 양측 모두 임전무퇴의 각오다. 다만 공화당이 인준을 강행할 경우 민주당으로선 뾰족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인 19, 20일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고(故)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을 놓고 후보자 정보와 정치적 득실을 논의했다. 그는 21일 오전 폭스뉴스채널 인터뷰에선 "25, 26일쯤 후보자를 발표할 것"이라며 "후보는 5명이고 모두 여성"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 바버라 라고아 제11연방고등법원 판사 등 보수성향 여성법관 2명으로 좁혀진다고 전했다. 코니 판사는 2016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법관으로 선호했던 인물이다. 새 인물인 쿠바계 라고아 판사는 히스패닉 유권자와 경합주(州) 플로리다 득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민주당은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연설에서 "내가 이기면 트럼프의 지명은 철회돼야 하고 새 대통령인 내가 지명하는 사람이 (대법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인준 강행 방침을 "부당한 정치권력 행사"라고 비난했다.
여론은 일단 민주당에 우호적이다. 이날 공개된 로이터통신ㆍ입소스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중 62%가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은 대선 승자가 지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했다. 민주당 온라인 모금창구인 '액트블루'에는 이날 낮까지 1억달러(약 1,162억원)가 모였다. 지지층이 결집하는 모양새다.
공화당 소속인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메인)에 이어 리사 머코우스키 의원(알래스카)도 이날 11월 대선 후에 후보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화당 상원의원 53명 중 2명이 이탈한 것이다. 밋 롬니 의원(유타)의 추가 이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설령 상원에서 찬반이 50석 대 50석 동률이더라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상원의장 자격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만큼 민주당 입장에선 공화당 이탈표가 더 필요하다. 또 대법관 인준안의 경우 2017년부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지 못하게 개정돼 인준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은 급기야 '대법관 증원' 카드까지 꺼냈다. 미 NBC방송은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측을 인용, "공화당이 긴즈버그 후임 인준을 강행하더라도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할 경우 현재 9명인 대법관을 증원하는 방식으로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 6명 대 진보 3명인 대법원 구성을 일거에 바꾸려면 대법관 정원을 12명 이상으로 늘려 진보 대법관 비율을 높이면 된다는 것이다. 미 연방대법관은 1869년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 이후 지금까지 변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