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에도 한산한 뉴욕 거리… 코로나 다자협력 절실하지만 "못 모여"

입력
2020.09.21 12:03
22일 각국 정상 연설도 사전 녹화로
유엔본부 입회자 평소 10%도 안돼 
"협력 절실에도 '외교관 없는 외교' 우려"

매년 9월이면 각국 정상과 외교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 몰려드는 미국 뉴욕이 올해는 한산하다. 뉴욕 유엔본부 인근 거리를 2주간 통제하던 삼엄한 경비도 없다. 유례 없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다자협력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각국 정상과 외교관 등을 막아선 거대한 장벽이 됐다.

미 CNN방송과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20일(현지시간) 전한 사상 처음 화상으로 진행하는 75회 유엔 총회 풍경이다. 앞서 15일 개회한 올해 유엔 총회는 핵심 행사인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고위급 일반 토론회를 오는 22일 연다. 하지만 유엔본부를 찾은 정상은 한 명도 없다. 마지막까지 ‘나홀로’ 현장 연설 가능성을 열어뒀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가상회의 참여로 결정했다.

때문에 올해 유엔 총회에서는 정상들의 돌발 발언이나 설전이 화제가 됐던 과거 총회의 볼거리는 없을 전망이다. 22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의 연설이 예정돼 있으나 모두 사전 녹화된 비디오로 진행된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유엔전문가 리처드 고완은 CNN에서 “각국 정상들이 팝콘 한 통을 들고 집에 앉아 모든 상대국을 감시할지 정말 의심스럽다”면서 화상 연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목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본부를 찾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 아니다. 국가당 한 명의 외교관이 사전녹화 연설을 소개하기 위해 본부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입회자 수는 평소(2,500명) 10분의 1도 안되는 21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총회의실과 복도 등 곳곳에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추가 비치하고 있다. 니콜라스 드리비에르 주유엔 프랑스대표부 대사는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팬데믹 시기에 이런 유엔 운영 방식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총회는 코로나19를 포함해 다자협력이 필요한 현안은 늘어난 데 반해, 활발한 대면 외교는 어려움에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CNN은 이를 “외교관 없는 외교세계”라고 칭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효과적 외교에는 개인 접촉이 필요하다’는 발언처럼 대면 외교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어가는 데 주요 수단인 게 현실이다.

한편에선 1945년 유엔 창립 이후 첫 가상 총회를 계기로 기존의 틀을 깨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갖고 있고 NGO나 지역조직 보다는 각국 정부가 주도권을 잡는 등 유엔 구조 개혁 필요성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다자협력을 위해 개혁의 적기라는 지적이다. 다만 “(유엔 내) 기득권자들은 변화를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면서 “개혁은 현실보다는 가상으로 남을 것 같다”고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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