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쓰나미 피할 수 없다면... 新부가가치 마중물로

입력
2020.09.19 04:30
12면
75세 넘기면 치매 등 유병확률 크게 늘어
간병사회, 천문학적 비용 소요로 건정성 위협 전망
노후 이슈 사회투자로 인식하고 새 산업으로 키워야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9>인구변화가 몰고 올 대형악재, 간병

‘늙음’이 사회의제가 되기엔 우리 사회는 아직 여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17년에 고령사회(고령인구/전체인구=14%↑)가 됐고 2019년엔 15.5% 수준이니 초고령사회(20%↑)까진 시간이 있다. 일본(28.4%, 2020년 1월 기준)과 비교하면 아직 ‘중년사회’란 말이 더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출산 급락이 반복된다면 시점은 앞당겨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추계대로면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점은 2025년(20.3%)이다. 이후 2030년(25.0%), 2040년(33.9%), 2050년(39.8%), 2067년(46.5%)처럼 갈수록 기울기가 급해진다. 출산율이 현행보다 높게 반영된 추계인데도 그렇다. 고령 인구 전성시대가 순식간에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초고령사회가 몰고 올 악재 중 하나는 ‘간병’ 문제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신체적 노화와 경제적 곤란을 비켜서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간병 부담이 얼마나 깊고 큰 충격을 주는 지는 당해본 사람은 안다. 급격한 인구변화는 이미 간병 사회의 임박을 예고하고 있다. 막상 닥치면 혼란과 갈등은 불가피해진다. 인식전환과 제도개혁이 시급한 배경이다.


이대로면 조만간 초고령사회 진입

의료계 등에서는 70세, 정확히는 75세부터 자연노화가 본격화된다고 본다. 능동적인 생활주체에서 수동적인 사회약자로 무게중심이 옮겨져, ‘봉양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2026년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부터 만으로 70세에 닿는다. 이때부터 20년간 생산가능인구의 절반가량이 실질적인 ‘부양인구→피부양인구’로 전환된다. 70세 이상의 노인은 2015년 9.0%에서 2035년 20.9%, 2050년 30.5%까지 뛴다. 중위연령도 2015년 40.8세에서 2060년 57.9세로 치솟는다. 동일기간 세계평균 추정치(29.6세→37.3세)와 비교조차 무의미하다.

이에 따라 노년부양비(고령인구/생산가능인구)도 폭증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18.8명에서 2036년 50명을 넘고 2067년엔 102.4명까지 늘어난다. 50년 사이 5.5배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상화된 늙음이 목격될 것이다. 해외사례를 찾을 것도 없다. 소멸위기에 처한 한국농촌의 현실이 우리의 미래다. 애기 울음은 사라진 지 오래고, 기름진 농지는 일손이 없어 풀숲으로 방치된다. 발본적인 개혁과 광범위한 준비가 아니면 ‘노년급증→봉양부담→지속불능’의 흐름 속에서 간병 악재는 방치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간병사회를 준비하고 있나

늙은 사회의 개막이 낳을 불편ㆍ불안한 갈등 지점은 간병 이슈로 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늙으면 아플 수밖에 없다. 더 벌 수도 없거니와 더 쓰는 상황이 펼쳐진다. 삶의 주체에서 병의 객체로의 전환은 금전비용과 심리불안 등 생활 품질이 악화되는 불행한 사태를 유발한다.

문제는 대응 정도다. 이게 만만치 않다. 사실상 제도 대응이 발생 수요를 못 따라가 종국엔 개별책임으로 전가될 우려가 크다. 혹은 제도와 현실의 괴리로 엇박자의 불협화음을 내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잠재적인 간병 필요가 폭증할 것이란 점부터 문제다. 현재 70세를 넘긴 고령인구는 10.2%(2019년 528만명)에 불과하다. 유병 비율이 급증하는 75세부터 따져도 325만명 수준이다. 전체 인구 중 6.3%로 이들이 간병 대상에 포함되는 직ㆍ간접적인 잠재그룹에 속한다(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통계ㆍ2019년). 이 정도 숫자인데도 이미 간병문제의 민감도과 시급성이 심각한 상황인데 초고령사회에 불거질 후폭풍은 불문가지다.

특히나 베이비부머가 일흔이 되는 2025년이 머지 않았다. 건강수명에 포함되는 70~74세를 빼도 2030년부터 매년 적어도 70~80만명, 많으면 100만명이 이후 20년간 75세로 들어선다. 간병공포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비켜서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절대다수는 어떤 질환이나 질병이든 유병노후의 그림자에 속한다. 가벼운 병이면 다행이나, 75세를 넘기면 치명적인 질환에 걸릴 확률이 급증한다. 그렇다면 노후생활은 유병지옥과 다름없다. 탄탄한 경제력이면 좀 낫지만, 그렇다 해도 불행은 공통적이다.

75세부터의 유병확률은 치매 발병에서 심각성이 확인된다. 고령 인구 중 치매환자는 2017년 9.94%(70만명)다. 10명 중 1명 꼴로 12분마다 1명씩 생긴다. 그나마 확정이 아닌 추정치다. 치매 특성상 감춰진 환자가 더 많을 수 있다. 65~69세(7.1%), 70~74세(6.9%)는 평균 이하지만, 75세 이후부터는 치매 발생 비중이 급증한다. 75~79세(21.3%), 80~84세(26.0%), 85세 이상(38.8%)으로 조사된다.

역시 앞으로가 문제인데, 노년 인구의 대량 등장과 평균 수명의 증가는 곧 치매 급증을 의미한다. 잠재적인 환자의 증가와 함께 ‘경증→중증’으로의 질환이 심화되는 것도 명약관화다. 비용 부담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 내고 덜 받는 복지개편과 무관하게 사회ㆍ개인비용 모두 천문학적 수준으로 뛸 전망이다.


유병노후가 갖는 위기에서 기회찾기

유병노후는 인구 변화발 특징이면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갖는, 양면적인 사회 트렌드이기도 하다. 유병노후를 ‘기대수명-건강수명’라고 정의한다면, 건강한 장수를 위해선 그 차이가 적을수록 좋다. 한국은 2017년 기준 ‘82.3세-73.2세’로 9.1년의 유병노후가 예상된다. 건강만 아니라 경제ㆍ활동ㆍ관계 등 종합적인 행복수명(74.6세)은 선진국보다 짧다. '기대수명-행복수명'의 차이는 한국(8.5년), 영국(5.7년), 미국(4.3년) 등으로 추산된다.

간병 확대는 사회 전체의 비용 부담을 요구한다. 가뜩이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발(發) 불황 대책으로 재정 투입이 확대된 판에 간병 비용까지 길고 넓게 요구되면 국가 건전성은 더 위험해진다. 복지 지출의 급증과 무관하게 성장까지 멈춰 증세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간병이슈가 사회 문제로 불거진 가장 늙은 국가인 일본처럼 불확실성의 심화 속에 개별 차원의 절약 역설이 확산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때 인구 변화는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의 원죄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간병사회는 인구변화가 낳은 확정적인 미래풍경이다. 인구변화의 흐름에 맞춰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면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고성장→저성장’에 맞춰 고안된 과거시스템을 수정해 수축사회에 맞도록 재편하는 게 좋다.

또한 노후 이슈를 생산적인 사회투자로 인식, 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혁신 모델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산업은 간병ㆍ의료만이 아닌 생활 전반의 공급 체계로 시장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소비도 시장도 새롭게 펼쳐진다.

노년 집단의 새로운 욕구 수요는 내수 산업의 유력 후보다. '제조업→서비스업'의 흐름과도 통한다. 당장은 연령조정의 시작부터가 순서다. 현재의 노인 기준은 옛날 잣대다. 상황이 바뀌었듯 제도 지속을 위한 기준 변경은 당연하다. 이해조정이 전제된 연령무차별적인 대타협에 나설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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