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 중국 유출 의혹' KAIST는 까맣게 몰랐다

입력
2020.09.10 11:39
파견 교수, 규정상 금지된 연구용역 버젓이 체결 
학교 측, 과기부 감사 결과 받고서야 뒤늦게 인지


지난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소속 교수의 자율주행기술 중국 기술 유출 의혹 사건’은 KAIST 측의 허술한 관리 탓에 빚어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교수는 규정상 금지돼 있는 연구용역을 버젓이 체결하고 돈까지 받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과기부의 감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10일 KAIST와 대전지검 등에 따르면 KAIST 교수 A씨는 2015년부터 중국 중경(충징)이공대에 파견 근무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용역을 체결하고 수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부는 지난 5월 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해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지난달 말 A씨를 구속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구속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A씨가 증거인멸을 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해당 기술이 자율주행 관련 핵심기술에 해당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씨는 검찰에는 물론, 과기부와 KAIST 측에 해당 기술은 ‘라이파이’로, 핵심 기술이 아닌 범용 기술인만큼 산업기술 유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파이는 가시광선을 이용해 대용량 데이터를 와이파이보다 빠른 속도로 전송하는 기술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A씨를 구속 수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다음 주 중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기술 유출 혐의 사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은 KAIST 측의 허술한 관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A씨가 연구용역은 기관 간에만 체결토록 하고, 교수 개인은 금지한 연구 관련 규정을 무시한 채 억대의 돈을 받고 연구용역을 체결했지만 학교 측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과기부 감사 결과를 통보받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기술 유출 여부 규명과 별개로 파견 교수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연구 활동을 했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학교 측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기술 유출이 사실로 밝혀지면 국가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해 쌓은 성과를 연구자가 해외로 빼돌렸다는 점에서 큰 국가적 손실이 될 수 있어 학교 측에 엄정하고 강력한 관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ST는 앞서 2013년 충징 양강신구에 있는 충징이공대학 양강캠퍼스에 국제 교육협력 프로그램(CLKIP)을 설치했다. 2014년부터는 전자정보공학과와 컴퓨터 과학기술공학과 등 2개 학과를 개설하고, 대학원 과정도 운영해 왔다. 이를 위해 매년 교수들을 파견해 각 프로그램 전공 과목의 일부를 맡겼다. A씨도 이런 일환으로 파견돼 보직을 맡고, 학생 지도와 대외 활동을 했다.

KAIST 관계자는 “파견 교수가 규정을 어기고, 해외에서 연구용역을 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학교 측에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파견 교수 관리 등에 대한 규정과 관리 체계 등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A씨의 행위의 업무상 배임 여부, 산업기술 유출 해당 여부 등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두선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