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지친 아이들과 함께 '건강한 지구'를

입력
2020.09.11 04:30
19면

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독서 경험이란 종이에 인쇄된 문자와 이미지를 해독하는 인지 과정으로서 일반적으로 생각되지만, 독서 경험에서 책의 물성과 형식이 가져오는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체험은 놓치지 말아야 할 책 읽기의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그 책의 형식이 섬세하게 주제를 반영하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책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즉 영화, 애니메이션, 웹사이트, VR 등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이나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선정할 때,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을 구현한 미디어 형식이나 예술적 표현에 관심을 기울인다. 어떤 예술작품들은 별다른 수업 없이 감상만으로 완성된 교육적 경험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존 듀이가 말한 “하나의 경험을 갖는 것” (having an experience) 이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고 가며 진행된 올해의 학습에서, 미디어 경험은 더욱 섬세하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한 눈에 살펴보는 펼쳐보는 자연사 박물관'(2015, 키즈엠) 은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독서 경험-학습이었다. 책 표지를 열고 페이지를 펼치면 2m가 훌쩍 넘는 거대한 타임라인 안에 45억년간 지구의 자연사 연대표가 다 들어가있다. 이 타임라인을 따라 걸어가며 아이들은 ‘지층과 화석’ 단원에서 배운 삼엽충, 암모나이트, 공룡이 지구의 역사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교과의 구성에서 지층과 화석은 따로 떨어져 독립된 학습 내용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연대표를 통해 화석 표본에서 만난 암모나이트는 정말 오래 전에 지구에 살았다는 것을, 상상 속 동물처럼 여겨지는 공룡이 지구의 역사 한가운데,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지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런던자연박물관은 이 책의 공동 제작자인데, 박물관 교육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책의 형태로 구현된 자연사 박물관’ 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미디어로 구현된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여 체험과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 런던자연사박물관 웹 사이트에는 자연사, 특히 공룡에 대한 다양한 학습자료들이 있다. 우리반 아이들이 특별히 즐거워 한 건 ‘지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How are dinosaur fossils formed?)’ 라는 제목의 귀여운 애니메이션이었다. 공룡 화석이 만들어지고 발견되는 과정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서대문자연사박물관과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 웹 사이트에서는 VR을 통해 박물관을 체험할 수 있다. (https://www.nhm.ac.uk/discover/how-are-fossils-formed.html)

지구 타임라인의 맨 끝에 붙어 있는 인류의 역사가, 이 긴 지구의 역사에서 얼마나 짧은지가 아이들에겐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책을 함께 보면서 우리 인간은 지구를 잠깐 빌린 손님이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빅 히스토리’ 개념에, 그리고 ‘인류세’ 라는 개념에 접근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지구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후 변화와 사라지는 빙하, 그리고 코로나 19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초래한 환경 변화는 이제 너무나 절실한 주제가 됐기에, 인류세와 포스트휴먼이라는 어려운 개념조차 아이들은 쉽게 이해하고 자신의삶에 반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지 않은 2학기 초입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내 친구 지구'를 읽을 날을 기다린다.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은, 뉴베리상 작가인 패트리샤 매클라클랜이 쓰고 프란체스카 산나가 그린, 지구와 어린이에 대한 헌정 작품이다. 이 책은 아이들과 한 장 한 장 손으로 넘기며 보고 싶다. 생동감 있는 색채와 섬세한 커팅으로 구성된 일러스트, 아름다운 싯구를 따라가며 그림책 예술에 몰입하다 보면, 살아가는 이 지구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그리고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 감동하게 된다.

프란체스카 산나는 책 머리에 “우리들의 친구 지구를 위해서 싸우고 지구를 돌보는 모든 어린이에게”라고 어린이에 대한 헌정사를 남겼다. “가끔 지구는 비를 너무 많이 내려요, 마을과 초록 들판과 길이 물에 잠겨요, 하지만 지구는 그 땅을 다시 말려 주어요.” 긴 장마와 전염병에 지친 어린이들과 함께 책장을 넘기며 함께 지구를 돌볼 방법을 모색할 그 날이 어서 오길 기대한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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