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제법 전문가가 증인으로 나와 일본 측 주장인 주권(국가)면제론을 반박했다. 이 전문가는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주권면제론의 예외를 인정해,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민성철)는 9일 국제인권법 분야 전문가인 백범석 경희대 국제대학 조교수를 불러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도 주권면제론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물었다.
주권면제론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일본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주권행위에 대해 재판할 권리가 없다”며 “소송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 교수는 그러나 주권면제론은 관습법으로 '절대 불변의 확고한 원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그 근거로 “경제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늘어나면서 상행위와 관련해서는 한 나라의 정부가 타국 법원에 제소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그러면서 "현재 과거의 주권면제론과 또다른 국제관습법으로 부상한 ‘인권침해에 대해 구제받을 권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먼저 유엔 및 지역기구가 채택한 인권조약과 선언을 예로 들면서 “피해자가 구제 받을 권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국제관습법으로 전환됐다”며 피해자 구제 권리 또한 주권면제론에 견줄 수 있는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아직까지는 논쟁이 치열하지만, 인권침해 사례에서는 주권면제론이 일부 제한돼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바라보면 위안부 문제에 주권면제론 적용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위안부와 같이 다른 구제수단이 없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그 범위에서 주권면제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권면제의 예외와 제한은 외교적 회의나 중재선언이 아니라 개별국가의 국내 입법이나 법원판결을 통해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덧붙여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인 11월 11일 이용수 할머니를 불러 당사자 신문을 하고 재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