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걷기 좋은 도시가 스마트시티다
인류에게 ‘걷기’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태어난 후 걷기 시작한 시점부터 비로소 세상을 똑바로 보게 된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 걷기가 힘들면 급격히 쇠약해지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 역시 100만년 전 걷기 시작한 후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발로 걷는 직립 보행을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불과 100년 전 등장한 자동차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도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로마시대에도 있었던 보도(步道: 보행자 도로)는 선택사항이 되었다. 걷기를 경시하고 보행자를 무시하는 문화가 확산된 것이다.
이런 문화의 바탕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보행자는 차의 이동에 걸림돌일 뿐이라는 의식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들에서 이런 생각들이 더욱 보편화되어 있다.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를 바가 없다. 갈수록 개선되는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보행자는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지하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수십만 명이 매일같이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의 보행권은 선언에 그치는 수준이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사실 보행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인식은 뿌리가 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무언가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그냥 걸어 다니는 사람 사이에는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 마차는 서양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동양의 고관대작들은 가마를 타고 다녔다. 도로의 중앙은 당연히 그들의 차지였다. 반면 보행자들은 길 가장자리나 심지어 별도 샛길을 이용해야 했다.
신분제도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도 이 같은 인식은 여전하다. 자동차가 대중화돼 마차나 가마처럼 지위를 상징하지 않는 시대가 됐음에도 차량 통행을 위해 횡단보도를 지우고 지하도와 육교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행자들의 안전도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다. 우회전 차량들은 보행신호도 무시하기 일쑤고, 보행자가 위협을 느껴도 사람을 치지 않으면 아무 벌칙을 받지 않는다.
도로 옆 인도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오토바이와 킥보드가 되레 주인인 양 보도를 침범하고 보행자 사이를 곡예하듯 휘젓고 다닌다. 보도까지 차량이 올라와 주차돼 있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도시에 살면서 선진국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 지역이자 '핫플레이스'인 강남역 사거리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강남역 동쪽 12번 출구에서 서쪽 9번 출구로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 미로 같은 지하상가를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짧아도 250m다. 지상으로 가려면 교차로에서 300m 북쪽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추가로 왕복 600m를 더 걸어야 하니 총 850m다.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거리보다 100m 더 멀다. 젊은이들에게도 이 거리는 부담스러운데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있다면 150m만 걸으면 된다.
경기 남부의 교통 허브로 불리는 수원역은 더 열악하다. 수원역 앞에는 서울광장 4분의 1 규모의 ‘교통섬’이 있다. 연결된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어 보행자들에겐 사실상의 섬이다. 그렇다고 회전교차로(로터리)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무늬만 로터리지 5개 신호등이 있는 기형적인 신호교차로다. 전철역에서 내린 승객이 건너편 버스환승센터로 가려면 지하로 내려가 250m를 걷거나 육교를 통해 450m를 걸어야 한다. 이 때문인지 이곳에선 수원에서 무단 횡단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강남역처럼 이곳에도 횡단보도만 설치하면 75m를 걸어 길 건너로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횡단보도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지하 80여개 상가가 반대해 번번이 무산됐다. 그 결과 매일 30만명이 몇백 m를 더 걷고, 목숨을 걸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지하상가도 살리고 보행자도 살리는 방안이 진정 없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빅데이터부터 인공위성, 센서 등 현란한 기술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진정한 스마트시티는 걷기 좋은 도시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만 있으면 족하다. 걷는 이들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지키는 사복경찰과 다름 없다. 많은 눈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사고현장에서 부상자를 구출하기도 한다.
보행자는 이웃과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마을 만들기의 주체가 된다. 전통시장과 동네 맛집을 이용하니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된다. 정보가 필요하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만 하면 된다. 자동차 이용을 억제하고 도시를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하여 성공한 도시재생 사례는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다. 반대로 자동차 중심 전략으로 성공했다는 예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행공간이 많아질수록 도시는 더 건강해진다. 2004년 서울시청 앞 교차로가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완전한 자동차공간을 사람에게 돌려주고 횡단보도도 놓았다. 교통체증을 우려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막힐 것 같으면 돌아가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교통의 유연성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주변 직장인들과 시민들의 보행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광화문광장도 역시 걸어 다닐 수 있어 명소가 되었고 촛불혁명을 잉태할 수 있었다.
건강한 도시 만들기의 핵심은 마음 놓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street)이다. 실제로 자동차 통행량이 적은 동네일수록 주민들 간의 교류가 많고 거리 구석구석을 더 잘 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이 걸어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가 도로폭을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도로다이어트(Road Diet)를 시도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아쉬움도 크다. 강남대로 같은 보행량이 많은 곳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지엽적인 도로에 그치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강남대로 차로를 줄이고 보도를 늘리면 어떨까. 강남대로의 중심축인 강남역-신논현역 사이를 지나는 차량의 70% 이상은 다른 우회도로를 이용해도 되는 단순 통과차량이다. 차로가 줄면 처음에는 막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소된다. 청계천 복원부터 광화문광장까지 충분한 경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대신 보도를 확장하면 강남은 더욱 걷기 좋은 거리가 될 것이다.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와 같이 거리공연이 일상화되고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
보도는 연결돼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차와 마찬가지로 걷는 길도 연결되지 못하면 길로서의 의미가 없다. 강남역 사거리와 수원역 앞의 횡단보도가 중요한 이유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앞다투어 보행 환경을 개선하면서 차량 이용을 줄여가고 있다.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북유럽 국가에선 걷는 사람이 최우선권을 갖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늉만 해도 차는 멈추어야 한다. 차도는 좁아지고 보도와 자전거 도로는 계속 넓어진다. 왜 그럴까. 지속가능한 스마트시티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