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러시아의 완고한 봉건주의에 사회주의가 밀물처럼 닥쳐들던 시대의 두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문학의 두 경향을 대비하는 존재로 병치되곤 한다. 톨스토이가 웅장한 스케일로 거대 서사를 주로 다뤘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심층을 미시적으로 해부했고, 톨스토이가 계몽, 윤리의 지평에서 인간을 만나고자 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종교ㆍ이념과 이성을 냉소하며 인간의 어두운 진실을 한사코 들췄다. 백작 혈통에 대영지와 농노를 물려받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썼고, 하위중산층 출신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도박 빚에 쫓기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빈민가에서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죄와 벌'을 썼다.
비평가 조지 스타이너는 역저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에서 톨스토이를 '이성을 숭배한 활력의 화신'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합리주의를 경멸한 병적인 영혼'이라고 규정했다. 거기에 기대 덕성여대 영문학과 윤지관 교수는 1980년대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고한 어떤 글에서 '머리는 톨스토이, 가슴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했'노라 썼다. 스타이너의 책 제목처럼, 7년 연상의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톨스토이가 흔히 먼저 언급되는 까닭도 그런 대비, 혹은 상반되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깨달은 스승과 철없는 반항아의 이미지.
50대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1872)을 썼지만, 그 나이의 톨스토이는 청년기의 방황과 방탕을 반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칭송받아 온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참회록'(1882)을 썼다. 선배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에 펼쳐 놓은 격정과 불화의 세계도 엿보았을 것이다. 참회록을 쓰면서, 제목을 달면서, 그는 여전히 식지 않는 충동, 치미는 욕망을 고통스레 응시했을 것이다. 톨스토이(1828.9.9~1910.11.20)가 1889년 탈고하고도 의자 등받이 속에 감춰 유고로 남긴 '악마'(이나미 옮김, 작가정신)는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진짜 '참회록'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