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닌 어른' 되고 싶다면, 수평적 권위에 동참하라

입력
2020.09.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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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참 권위적인 사람이네요.” 탈(脫) 권위를 부르짖는 요즘 시대에 이 말은 단언컨대 욕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 권위는 자주 소환된다. 꼰대와 동급으로 취급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역설적으로 권위의 부활을 노래한다.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진 탈 권위 시대, 그래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은 나아졌냐는 물음을 던지면서다. 전작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에서 신자유주의 경제가 유발하는 심리적 폐해를 날카롭게 파헤쳤던 저자는 이번엔 분석 틀로 ‘권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육아와 교육, 경제, 정치 분야까지 넘나들며 권위의 부재가 가져온 사회적 문제를 해부하고, 권위는 어떠해야 하는지 새로운 권위 모델도 제시한다.



요새 아이들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상전이다. 부모부터 쩔쩔 맨다. 학교의 교사나 주변 어른들조차 역시 ‘아이 기 죽인다’는 핀잔을 듣게 될까 아이의 잘못을 봐도 눈 감고 만다. 저자는 이처럼 아이를 떠받들기만 하는 육아와 교육은 아이를 되려 망치는 지름길이라 단언한다. 양육자와 교육자가 스스로 권위를 내팽개치는 건 ‘네 멋대로 살라’는 명백한 방임이란 지적이다. 어른들이 권위자가 되기를 회피하는 사이, 아이들은 반사회적으로 길러진다.

권위의 부재는 사회적으로 과잉 규제도 야기한다. 권위는 신뢰 관계를 기초로 한 자발적 복종이다. 권위가 무너지면 전반적으로 불신이 쌓이고, 사회는 각종 규칙과 규제를 만들어 구성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밖에 없다. 권위가 사라진 교사는 아이들의 벌점을 매기고 처벌 강도를 높이는 데만 매달린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번 아웃과 우울증을 자주 호소하는 것 역시 권위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 차지한 규제와 규칙 때문이라 분석한다.

그렇다고 예전에 권위로 되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그간 권위가 욕을 먹었던 것은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통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권력과 다를 게 없었다. 저자는 이를 탈피하는 새로운 권위의 지향점으로 ‘수평적 권위’를 제안한다. 수평적 권위는 한 개인이 자기 힘만으로 가질 수 없다. 평등한 위치에서 발언할 수 있는 여러 집단이 동참할 때 수평적 권위는 형성된다. 또 집단 구성원 상호간의 사회적 통제가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수직적 권위에서 수평적 권위로의 이동은 다스베이더가 빅브라더에 자리를 내주는 것에 비유한다.



이 책의 미덕은 수평적 권위가 작동하는 여러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이다. 양육문제로 돌아가면, 우리는 흔히 아이는 부모 혼자 키운다고 착각한다. 부모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고 독점하려 드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실제 양육은 부모만 하는 게 아니다. 교사, 아이의 친구 등 또래집단, 다른 학부모 등 다양한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다. 아이가 담배를 몰래 피우는 걸 목격했을 때, 당장 담배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거나 못 본척하는 건 권위를 세우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대신 흡연은 건강에 나쁘다는 걸 일러준 후 아이 주변인들에게 계속 문제를 상의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는 부모의 진정한 걱정과 보살핌의 메시지를 전달 받고 달라질 수 있다. 권위는 네트워크 형태로 작동할 때 힘을 받는다. 최근 기업 경영에서 투명성과 공유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역시 수평적 권위를 받아들인 결과다.

정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민의를 수렴한다는 선거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 투표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부동층이 늘어나는 건, 투표가 민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권위를 잃은 정부는 대놓고 권력을 행사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로 공동체가 권위를 쌓아 나가는 게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건 숙의 민주주의다. 찬반이 팽팽한 사안에 대해 충분한 정보와 토론 시간을 보장해 결정토록 하는 ‘공론조사’도 그 중 하나다.

또 사회를 최대한 다양하게 반영하는 ‘대표 집단’을 만들어 의사를 표현하는 비례대표제 확대, 사람이 아니라 특정 정책에 투표하는 형태의 어젠다 권력 등 여러 대안 모델들을 제시한다. 핵심은 정치의 권위 역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권력과 꼰대만 남은 시대, 수평적 권위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책은 제목에 답해준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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