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지난 봄 여름 땀 흘려 이룬 풍요로운 결실을 함께 축하하고 나누는 자리다. 멀리 떨어졌던 가족 친지가 한데 모이는 명절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추석이 항상 같지는 않았다. 너무 이르거나 늦기도 했고, 그 해의 경기가 좋고 나쁨에 따라 흥이 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추석이 될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본격 확산된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노멀의 달라진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친인척이 먼 거리에서 한데 모이는 건 피하게 될 것이고, 함께 성묘하고 차례를 지내는 것도 자제해야 될지 모른다. 모이지 못하는 건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미 코로나19에 생계가 무너져 차마 얼굴을 비칠 수 없는, 막막하고 서러운 추석을 맞아야 할 이들도 많아졌다.
그간 지나친 사회적 밀착을 강요한 명절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은 홀가분해져 좋을 수도 있겠지만, 바이러스의 공포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된 언택트 추석의 풍경은 씁쓸하고 서글프다.
사실 코로나 이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결혼식은 최소의 하객으로 조촐하게 치러졌고, 장례식 또한 조문객이 크게 줄었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청첩과 부고를 여럿 받았지만, 대부분 인편을 통해 인사를 대신 전하곤 했다. 예가 아니었지만 코로나 상황에선 예와 도리를 모두 지키긴 쉽지 않았다. 학교와 회사를 갈 수 없고, 점포 문을 제대로 열 수 없게 된 마당에 명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얼마 전까진 지금보다 희망적인 추석을 꿈꿨다. K방역의 자랑스러운 성과 덕에 우린 코로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다른 나라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 조금 더 버티면 잃었던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찾을 거라 기대했다. 어쩌면 이번 추석은 그간의 수고로움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의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이 주도한 지난 광복절 광화문집회 발 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으로 우리의 간절한 기대는 허망하게 스러졌다. 견고하게 세웠던 성벽이 내부의 총질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노골적인 방역 방해로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날마다 오전 발표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할 때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안도와 한숨이 교차하는 공포의 레이스다. 대유행의 중대 갈림길, 방역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사회 경제적 파장이 큰 셧다운을 어떻게든 피하려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언제 맘 편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 수준의 방역마저 뚫리면 모든 걸 틀어막는 3단계가 불가피하다. 힘겹게 열어 그 동안 코로나 블루를 달래주던 스포츠도 다시 문을 닫아야 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을 잡아줄 많은 끈들도 사라진다.
앞으로 한 달 잘 막아내 추석 보름달엔 희망의 꿈을 빌 수 있길 기대한다. 휘영청 밝은 한가위 달빛이 바닥을 딛고 일어설 간절한 바람들을 위무해 줄 수 있기를. 부디 최악의 상황, 원망과 절망만 가득 찬 비극의 보름달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