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가 전 세계 가정경제에 먹구름을 들이우고 있다. 팍팍해진 가계를 꾸려나가는 방안 중 하나로 '물물교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여파에 따른 경제난과 실업률 증가 문제를 다루면서 "물물교환을 위한 모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람 간 소통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게 BBC의 평가다.
런던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마조리 던은 물물교환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4월 병원에서 5일간 꼬박 근무하고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온 뒤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버리기가 아까워 물물교환 모임 '바터 유나이티드 킹덤'에 가입했다. 그는 드레스와 영상 DVD를 내놓고 카레와 케이크 등 먹거리를 얻었다.
던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맛봤다"고 했다. 병원 근무로 지칠대로 지쳐 요리할 힘이 없었고 온라인쇼핑으로 많은 돈을 쓴 상태였다기 때문이다. 그는 "물물교환을 통해 가족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던은 지금 지인들 사이에서 '물물교환 예찬론자'로 통한다.
물건뿐만 아니라 시간도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1970년대 일본을 시작으로 90년대 미국에도 퍼진 일명 '타임뱅킹'이 최근 인기다. 타임뱅킹은 회원들 간에 1시간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고 그 대가로 1시간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회원들은 피아노 레슨이나 그림 교습, 언어 교육 같은 것들을 서로 제공하고 제공받는다. 온라인 화상을 통해서도 시간 교환이 가능해 최근 들어 타임뱅킹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고 있다.
실제 영국에선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 타임뱅킹 관련 모임이 4개나 새로 생겼다. 이들 모임은 지역사회를 돕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경제 위기로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거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건강 체크를 도와주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는 건 경계한다. 물물교환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호교환 형태로 연결되도록 노력하는 게 기본이다.
이러한 물물교환 방식은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피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피지는 코로나19로 치명타를 입어 약 1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마를렌 두타는 피지의 열악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오래 전 이곳의 물물교환 단체였던 '베이사'를 부활시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현재 회원 수는 19만명까지 늘었다. "피지 인구의 20%가 넘는 수치"라고 두타는 말했다.
회원 수가 급증한 건 피지의 경제난 때문이었다. 두타는 "돈을 벌기 힘든 상황에서 더 이상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물물교환은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대공황 초기에 300개 이상의 물물교환 단체가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화폐를 구하기 어려워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직접 맞바꾸는 거래가 등장한 것이다. 피지인들도 이동수단인 카약을 얻기 위해 돼지를 내놓는가 하면 가죽 가방과 바이올린을 바꾸기도 한다. 벽돌과 도넛을 교환 물품으로 내놓는 이들도 있다. 물물교환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물물교환이 경제적 활동 그 이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로 폐쇄된 생활을 할수록 사람들로 하여금 연대의식을 좇게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마일즈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경영대학원 교수는 "물물교환은 돈을 소비하지 않고도 공동체 정신과 사람들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