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 구출된 소와 스테이크

입력
2020.08.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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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마철 집중 호우로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는 등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컸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지금도 복구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재해 발생시 동물도 이를 피해갈 수 없는 건 2017년 경북 포항 지진, 2019년 강원 고성 산불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당시에는 대피소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거나 목줄에 묶여 다가오는 불길을 피하지 못한 반려동물이 관심을 받았다. 이와 달리 이번 호우 피해에서 주목 받은 동물은 다름아닌 ‘소’다.

불어난 물에 지붕 위까지 올라갔지만 물이 빠진 다음, 땅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들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살아남은 소들을 살려내는 일의 중요함에 공감했다고 한다. 지붕 위에서 소를 끌어내리는 현장은 실시간으로 보도됐고, 구조된 어미 소 한 마리가 다음날 쌍둥이 송아지를 낳았다는 감동적인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외에 축사를 탈출해 3㎞ 떨어진 전남 구례군 사성암 대웅전까지 피신한 소들도 있었고, 폭우로 떠내려가 90㎞ 떨어진 곳에서 열흘 만에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한우 값 폭등' 뉴스를 제외하고 이처럼 소가 주목 받을 때가 있었을까 싶다.


해당 기사들 댓글 중 눈에 띄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아봤자 사람들이 먹어 치우는 고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과 "저 소는 도살장으로 보내지 말고 끝까지 데리고 살면 좋겠다" "진짜 생명은 다 소중한 건데 풀만 먹어야 되냐" 등이다. 일부 커뮤니티와 동물보호단체 사이에선 "육식에 회의를 느끼는 것을 넘어 축산업 등 사회 전체를 바꿔야 한다"거나 나아가 "이번 장마의 원인으로 꼽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온실가스(메탄)를 줄이기 위해 고기 식단을 줄이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농장 동물을 접시 위 음식으로만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으로 여기고, 사육해서 먹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농장 동물에 대해 동정심이나 공감을 느끼면서도 이를 먹는 행위는 해외에서도 끊임 없이 다뤄지는 연구 주제다. 호주 빅토리아대 로렌 카밀레리 외 연구진은 동물에 대한 공감과 고기 소비 사이에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동물에 대해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도덕적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도덕적 이탈 수준이 높고, 이는 더 많은 고기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기 소비를 줄이려면 사람들이 도덕적 이탈을 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 5월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성격과 개인차'(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에 실렸다. 그밖에도 사람들이 농장 동물을 마트에 진열된 상품화된 붉은 고기로만 접함으로써 생명이 아니라 음식으로만 여기는 경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동물에 공감하면서 고기를 먹는 심리까지 생각해보진 않더라도 이번 폭우 속 소들은 그들이 얼마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지, 얼마나 똑똑한지를 알려주었다. 또 소가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고 도축되는지,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한 건 분명하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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