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규제와 면피행정... 갈 길 먼 ‘그린 에너지’

입력
2020.08.31 14:14
‘그린 뉴딜’ 사업 현장 르포

정부가 7월 글로벌 선도 국가 도약과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 ‘한국판 뉴딜’을 선포했다. 친환경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 주도하겠다는 ‘그린 뉴딜’ 사업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2017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2030년까지 전력생산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를 발표한 이후 태양광, 풍력 발전 사업을 독려해왔다. 정부는 이번에 2025년까지 73조원을 투자해서 일자리 65만 9,000개를 창출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신재생에너지 확산 기반구축 계획을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반신반의한다. 곳곳에 널린 규제 ‘암초’, 법적 미비, 일선 공무원들의 면피행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현장 사례를 통해 ‘그린 뉴딜’이 넘어야 할 산을 미리 가본다.


# 1: ‘일석오조’ 염전복합 태양광 사업 불허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일을 함으로써 두 가지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이지만 염전복합 태양광 사업을 시작한 고영익(50) 세종 영농조합법인 대표에게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3대째 염전사업을 해온 고 대표는 5년 넘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염전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그 위에 바닷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고품질 소금과 고효율 전력을 동시에 생산하는 특허와 설비를 다 갖추고도 관련 부처의 제동으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지금까지 14억원 이상을 투입해놓고 허가과정에서 6월초 해양수산부(해수부)로부터 두 사업 병행이 불가하다는 최종 회신을 받았다.

7월말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탄동리 염전 위에 세워진 염전복합 태양광 시설에서 만난 고 대표는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천일염 생산과 전기 생산은 개별법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이를 병행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답니다. 소금 생산은 상관없지만 전기 판매는 할 수 없고, 전기를 판매하려면 소금 생산을 하지 말라는 말이죠. 현행법에 따라 에너지 사업을 하려면 폐전, 폐업 후 하랍니다. 소금은 염전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데...”

고 대표는 해수부 질의에 앞서 중소벤처기업부 옴부즈만지원단과 이러한 문제를 상의했다. 옴브즈만지원단은 내부 논의 끝에 해수부에 천일염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고 대표는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생산된 전기를 버리든가, 태양광 패널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소금 생산과 태양광 발전은 일조양이 많아야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높아요. 더욱이 태양광 패널 위에 바닷물이 흐르면서 태양광 모듈의 온도를 낮춰 발전효율이 15% 이상 좋습니다. 또 모듈 복사열 덕분에 염수 증발시간도 단축될 뿐만 아니라 패널 위에서 깨끗하게 생산된 소금은 일반 천일염보다 입자가 가늘고 고와 일반 천일염보다 6배 이상 가격으로 팔 수 있어요. 소금값 폭락과 염전 폐업으로 어촌이 황폐화하는 판에 새로운 소득원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고요. 일석오조(一石五鳥) 이상의 효과가 있는 걸 왜 막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린 뉴딜’ 사업 제대로 할 거면 이런 말도 안되는 것부터 해결해줘야죠.”



# 2: 발전 허가 받고 풍황계측기 설치까지 5년 걸려

우람종합건설(사장 홍종후)은 풍력·태양광발전 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기업 중의 하나이다. 2013년부터 전국 각지에 태양광 발전소 4곳, 연료전지 사업 4곳, 풍력발전소 8곳을 조성하고 있다. 완공시 발전사업의 용량만 해도 1,800MW에 이른다. 원자력 2기 정도의 규모이다. 주민들에게 지분(20%)을 주고 사업에 참여시키는 주민참여 방식을 처음 도입한 주체도 우람종합건설이다. 홍 대표는 “지금까지 수십억 원을 투자하면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정부의 사업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추진중인 16개 사업지 가운데 발전사업 허가가 난 곳은 6개이고, 나머지는 개발행위 인허가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튀어나오면서 길게는 5년 넘게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의욕을 꺾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 풍력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바람의 세기(경제성)를 측정하는 풍황계측기 설치 인허가 과정에서 불거졌다. 2016년 2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후 풍황계측기 설치를 싸고 2년에 이르는 소송전을 벌여야 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동부지방산림청이 신청지가 “경제림육성단지 내 인공조림지에 해당된다”며 계측기 설치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자연림에는 설치할 수 있지만 인공조림지에는 불가하다는 규정이 불허 이유였다. 부득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1심, 2심, 3심을 모두 승소한 후 2019년 10월 풍황계측기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창국유림관리소가 발목을 잡았다. 계측기가 재생에너지 설비에 포함되는지 산업자원부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후 7개월이 지난 7월 초에야 최종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지역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지 거의 5년 만에 겨우 계측기를 설치해 경제성 실측을 추가로 하게 된 것이다.

“100MW급 풍력발전단지 100곳을 건설해도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의 0.027%에 불과하고 이 정도는 자연상태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또 산의 능선부는 대체로 바람이 강하고 토양이 척박해서 나무나 풀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자연림이든 인공조림지이든 똑 같은 조건이죠. 그런데 인공조림지라고 해서 계측기 설치를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또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전 단계에서 설치할 계측기가 재생에너지 설비시설인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요? ”(홍종후 사장)



# 3: 간척지에 스마트팜 조성에 부처간 “핑퐁 행정”

2017년 7월 전남지역 8개 시군의 신재생에너지주민협동조합연합회(대표 김준태)가 출범했다. 연합회는 염해가 심각해 농사가 어려운 간척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생산된 전력으로 스마트팜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 간척지들에는 소금기가 심하고 농업용수 시설이 부족해 농사짓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이 땅을 스마트팜으로 바꾸면 벼농사보다 최소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연합회는 전라남도 13개 지역의 염해피해 간척지와 휴경지 등을 대상으로 주민참여 태양광발전 사업지(10GW규모)을 개발하고 있다. 이 조합에 참여한 주민들이 7천여 명에 이른다.

농림수산식품부나 산자부도 환영했다. 특히 농림부는 농촌 태양광발전 활성화 차원에서 영농형 태양광 시설을 지원하는 등 적극 나섰다. 특히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우리나라 염전 1,400만평을 활용하면 원자력발전 3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12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태양광 발전을 권장하기 위해 염해피해지역의 절대농지에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 가능하도록 농지법이 2019년 7월 변경됐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안가 ‘그림의 떡’으로 드러났다. 법적으로 당해 지역의 염도를 측정해서 일정 기준치를 넘어야 허가가 나오는데 해당지역의 평균 염도가 아니라 각 측정 지점 위주로 되다보니 염도 0.001의 차이로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불허된 지역이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처럼 끼어있어 대단위 부지 확보를 하지 못하니 추진이 안돼죠. 해당 지역 샘플 측정지의 염도를 평균으로 내서 그 일대를 지정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현재로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결정권이 없다고 합니다.”

김 대표가 이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연합회는 농림부와 산자부를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모두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연합회는 해남군 산이면 부동간척지를 규제자유 및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해남군-전남도-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중앙도시계획위원회 등을 거쳐야 하는 멀고먼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충남 태안에 에너지특구를 지정한 전례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력 구매단가가 낮아서 기업들이 참여를 포기했지만 이번엔 가능합니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애가 바짝바짝 탑니다. ”

# 4: “에너지 특구지정이나 한시적 특별법 필요”

정부가 인허가를 위한 수많은 절차와 규정을 둔 것은 그 이유와 배경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지 못하기에 처음에 모든 리스크를 파악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관련법에 앞뒤가 맞지 않거나 서로 상치되는 규정이 도처에 있고 지자체마다 관련 기준과 조례도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서로 다른 기준과 규정이 있을 때에는 그 상태에서 사업은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관련 당국은 ‘소송을 통해서 해결하라’고 한다. 사업자들로서는 속이 터질 일이다. 실제로 수없이 발표된 정부의 정책도 일선에선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하거나 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해온 한 민간 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이 수 차례 규제 혁파를 외치고 사업 진행을 독려해도 일선 공무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관련된 모든 규제를 완화하고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한시적 특별법을 통해 공무원들이 안심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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