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만난 서훈ㆍ양제츠, 대화 테이블엔 '미중갈등' 올랐다

입력
2020.08.22 18:40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杨洁篪)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의 회담 및 오찬이 22일 오후 종료됐다. ‘당일치기’ 만남이었으나 ‘밀도’는 높았다. 오전 9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회담이 이어졌고, 오찬은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20분까지 진행됐다. 함께 한 시간만 6시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협력, 한중 고위급 교류 등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도 “좋은 대화였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 편 들라’ 요구했나… 靑 “양제츠, 미중관계 설명”

서면브리핑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양제츠 정치국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측 입장을 설명하였고, 서훈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다.”

‘미중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서훈 실장이 ‘공영’과 ‘우호 협력’ 등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양제츠 정치국원이 미중 갈등 상황과 중국의 입장을 비중 있게 설명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양 정치국원의 방한은 무역, 기술, 홍콩, 대만, 남중국해 등 여러 사안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양 정치국원은 중국에 대한 지지, 또는 최소한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싱가포르를 들렀는데, 공교롭게도 싱가포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국가다. 이에 양 정치국원의 이번 여정이 '우군 확보'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 짙게 나왔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일 “중국 최고 외교관의 싱가포르와 한국 방문은 워싱턴과의 지정학적인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양측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논의했다. 서훈 실장은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고, 양제츠 정치국원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과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시진핑 방한은 “조기 성사”로… ‘연내’ 표현은 없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도 논의됐다. 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서 실장과 양 위원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하였고,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이는 방한 시기에 대해서는 완전히 매듭을 짓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라는 조건이 달린 것도 시 주석 방한 일정이 아직 불투명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그간 시 주석이 ‘연내’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이러한 표현이 이날 브리핑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는 중국 측이 “한국은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시 주석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먼저 한국을 찾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 대변인은 “양측은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 협의하였고,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리커창 총리의 방한이 이뤄지면 한중일 3국 관계는 물론, 한중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고 소개했다.


靑 “한중 교류ㆍ협력 활성화 중요한 이정표”

한중 양측은 “양 정치국원의 2년 만의 방한이 한중 간 교류ㆍ협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협력 논의도 있었다. 서 실장은 특히 항공편 증편, 비자발급 대상자 확대 등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중국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양 정치국원은 서 실장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강 대변인은 이날 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가속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ㆍ신북방정책(한국)과 일대일로(중국)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등 다자 분야 협력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도 있었다고 전했다.

강 대변인은 “이번 양제츠 정치국원의 방한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측 고위급 인사의 첫 방한으로서, 한중 간 고위급 대면 소통을 통해 양국 간 교류‧협력을 회복하고 활성화 해나가고자 하는 양국 간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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