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배우의 결혼식 사회를 위해 예행연습을 했다. 양가 어머니 두 분이 나란히 편지를 읽는 순서가 있었다. “어머님, 여기 동그랗게 조명이 켜져 있죠? 이 조명 안에서 편지를 읽으시면 됩니다.” 두 분은 그 빛 속에서 어딘가 계속 어색한 모습이었다. 편지를 든 손이 벌벌 떨리고, 시선이 흔들리고, 급기야 청심환을 찾았다. “미안해요. 생전에 이런 곳에 서 본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배우에 도전하는 분들과 연극을 만들 때 보면, 대부분은 꽤 연기를 잘한다. 연출자로서 이들에게 인물에 자신을 넣지 말고 자신을 인물에 넣으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연기는 잘 하는 법이니까. 문제는 극장 무대에 설 때다. 대부분 무대에서 조명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 그 빛이 나의 어디를 비추는지, 그 빛 안에서 나는 어떤 표정과 자세로 있어야 하는지. 특히 단 한 명의 배우를 비추는 독백 조명의 경우, 홀로 그 빛의 시간을 견뎌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조명 디자이너가 세 명 있다. A 디자이너는 꾸준히 연습실에 들러 배우들의 감정 변화를 계속 체크한다. 인물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조명의 색이 바뀐다. 감정의 굴곡에 따라 빛과 색이 변하는 시간도 달라진다. B 디자이너는 대본을 읽고 떠오르는 빛과 색을 자연과 일상에서 찾아와 보여준다. 해지기 직전의 노을, 캄캄한 어둠 속 가로등, 흰 눈이 수북한 나무에 홀로 남은 가을 단풍. C 디자이너는 공연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색을 찾고 그 색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하나의 색을 향하던 인물들이 갈등을 통해 여러 색으로 갈라지고, 갈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다시 하나의 색으로 모아진다. 그 하나의 색을 향하는 여러 색의 노력 때문에 공연은 엄청난 에너지로 감싸진다.
조명은 무대 위의 ‘누군가’를 밝히는 일이다. 거꾸로 조명은 무대 위의 ‘누군가’를 어둠 속에 놓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가 환하면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어두우면 ‘모두’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모두에게, 때로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빛을 보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래서 배우는 무대 위에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누군가 밝으면 누군가는 어둡다. 가장 큰 어둠은 객석이다. 무대 위의 존재가 밝게 빛날 수 있도록, 인생의 두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는 존재들이 있다. 누군가를 밝히는 공연이 끝난 후, 모든 것이 환히 밝아진 후에야, 그 존재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항상 약속한다. 객석이 밝아지면, 곧바로 인사를 하지 말고, 객석의 곳곳을 단 몇 초라도 바라본 후에 천천히 인사를 하자고. 그것이 오늘 하루 어둠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존중이라고.
공연 직전 객석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면, 디자이너의 개성에 따라 조명의 배치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조명은 무대를 향해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무대를 바라보며 배우를 빛내는 존재들. 나는 가끔 또 다른 객석이 천장에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극장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객석. 두 방향의 빛. 그 아름다운 빛이 계속될 수 있기를. 비록 지금은 잠시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