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는 가운데, 지난 11일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코로나 백신을 등록했다고 밝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 백신을 만들어 내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었던지 러시아 정부는 3차 임상실험을 하기도 전에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러시아 백신 개발 소식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건 중에는 벨라루스 대선과 반정부 시위 발생 소식이 있다. 8월 9일 벨라루스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루카센코가 80%의 지지로 승리하였다. 그러자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는데, 공권력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지난 1주일간 6,700명가량을 체포했다는 것이다. 선거 후의 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벨라루스 문제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벨라루스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에 크림을 빼앗기고 지금까지도 내분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바로 위쪽에 있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끼여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친러 성향을 보여 왔다. 소련 붕괴 이전에 한 번도 독자적인 국가를 이룬 적이 없었던 탓일까? 벨라루스인 대부분은 벨라루스어 및 민족 혈통에 기반한 배타적 민족주의를 지향하기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모든 시민들을 아우르는 개방적 국민 정체성을 가진다. 또한 벨라루스의 대러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도 이 국가의 친러 성향을 설명한다.
기실 벨라루스는 소련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가 된 14개 국가들 중에서 러시아와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러시아가 구소련 국가들을 포괄하기 위해 만든 기구, 즉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유라시아경제연합 모두에 벨라루스가 회원국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궁극적으로 연방과 비슷한 형태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다. 이미 두 국가 간에는 연방국가 조약이 맺어져 있으며, 현재 양국의 국민들은 자유롭게 상대 국가를 방문하거나 이주할 수 있다.
이번 시위 발발 배경에는 루카센코의 장기 집권이 있다. 1994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루카센코가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으니 무려 26년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승리는 그의 6번째 임기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의 장기 집권은 필요한 경우 반대파나 항의하는 일반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에 기반했다. 2006년 대선에서도 항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전력이 있다. 이번 사태도 시위대 체포 및 구타 등 정부의 억압적 과잉진압이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등이 시민들의 불만을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가 계속되고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다급해진 루카센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도움을 청했다. 정권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러시아의 개입과 지원, 혹은 개입할 수도 있다는 러시아 측의 위협에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시위 때와는 달리 시위대들이 친유럽 성향을 보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사태를 벨라루스 내부의 정치문제라기보다는 유럽-러시아 간의 대결 구도에서의 안보 문제로 간주한다. 즉 서구의 벨라루스에 대한 간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를 자극하는데 더없이 좋은 논리다.
벨라루스는 또 다른 우크라이나가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럽연합도 러시아도 벨라루스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루카센코 정권을 조금 더 지탱할 수 있게 도와주는 대신 루카센코로 하여금 계속 지연되고 있었던 연방국가 조약의 다양한 조치들을 빠르게 실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루카센코 대통령이 향후 1, 2년 내에 헌법을 개정한 후 권력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거래를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