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광주, 이낙연의 파묘

입력
2020.08.20 18:00
26면

5ㆍ18 사과 등 변화 실감케 하는 통합당
민주당은 성(性)인식, 파묘 과거 머물러
당권 주자, 지지층 의존 말고 당 구해야

미래통합당의 변화가 놀랍다. 몇 달 전만 해도 통합당은 시대를 못 읽고, 대화도 안 통하는 절벽이었다. 당의 이미지는 예컨대, “내가 국회의원 세 번 했어!”라며 코로나19 검진 권유를 뿌리치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모습이었다. 세월호와 5·18 망언은 통합당과 시민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증언한다. 피해자를 상처주고 표를 얻는 일은 선을 넘은 패륜이다. 그래도 됐던 것은 오직 극우 지지층만 바라본 탓이다. 그 강성 지지층이 얼마나 몰상식하고 반사회적인지는 지금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만천하에 각인시키고 있다. 통합당은 자정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유권자들이 차명진·민경욱·김진태 전 의원 등을 총선에서 걸러냈다.

지금 통합당은 다르다. 태극기 부대와 선을 그었고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1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5·18 사과를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사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쇼, 신파극이라는 폄하보다 적절한 평가다. 비대위원장이 ‘5·18 정신을 받들겠다’고 공식화했고 ‘부인할 수 없는 역사’라고 못박은 이상, 왜곡과 폄하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이 “5·18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당원은 무조건 제명하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변화는 시작됐다.

김 위원장이 광주에서 시대와 호흡하는 순간, 시대 변화에 눈 막고 귀 막은 민주당을 보기 좋게 대비시킨 것은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는 뉴질랜드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남자끼리 배도 툭툭 치고 엉덩이도 한번 치고 그런 것”이라고 두둔했다. 성별을 막론하고 남의 신체를 칠 수 있는 것, 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고 성범죄의 구조라는 사실을 도통 이해 못하는 그는 80년대 감수성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자체장들의 잇단 성범죄로 온 나라가 충격을 받았는데도 민주당은 ‘고인에 대한 예의’와 ‘문화적 차이’에서 맴돌고 있다.

통합당이 미래로 방향을 튼 이때에 민주당은 과거의 정당이 되고 있다. 성차별 성소수자 이슈 등 시대 변화에 무감각하고, 과거청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가장 소모적 논쟁이 될 파묘마저 불러온다. 이탈하는 지지자들은 법무부-검찰 갈등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부동산 대책을 다루는 태도에 오만함을 느낀다. ‘전광훈 효과’로 지지율이 반등했으나 이렇게 끝날 위기가 아니다.

당대표 후보들도 당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원의 표만 의식하는 탓이다. 이낙연 의원은 대세가 흔들리자 선명한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으나, 친일파 파묘에 동의하는 선명함이라니 안타깝다. 친일논쟁으로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고 있으니, 그가 아무리 방향을 잘 잡은 당 혁신안을 발표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당권 주자들과 민주당이 DJ정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얼마 전 목포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는 대통령 시절 DJ가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찍은 사진 앞에서 멈춰섰다.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게 만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맑게 웃고 있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군사정권으로부터 가장 핍박받은 정치인이었으나 보복에 나서지 않았다. 대선 후보 시절 “그들(전두환 노태우)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며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과거를 용서한 그는 복지국가의 기틀을 닦고 남북화해의 시대를 열어젖히며 미래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지금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이렇게 시대와 호흡하며 미래로 전진하는 것이 아닐까. 당권 주자들은 자문해 보길 바란다. 가라앉는 배의 선장이 되려는지, 배를 구해 순항하기를 바라는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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