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벚꽃 필 때 오시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좋은 생각입니다. 구체적 일정을 협의합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해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중일 양국 정상의 대화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4월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도쿄를 국빈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지 모른다. 한국 정부가 우려하던 시나리오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을 제쳐놓고 한국을 택했다.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19~20일 싱가포르에 이어 21~22일 한국을 찾는다. 그가 앞서 2월 말 방일을 준비하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정이 헝클어진 탓도 있지만, 그 사이 한국과 일본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중일 양국은 지난해 8월 외교차관급 전략대화를 7년만에 재개하며 관계 개선에 속도를 냈다. 중국은 넉달 뒤 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 일본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선물도 안겼다.
하지만 올해 1월 무역협상 1단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강경 일변도의 대중 정책을 견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은 코로나19 책임론, 홍콩보안법 등 첨예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미국을 노골적으로 편들며 미일동맹 강화를 외쳤다.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는 미국 주도의 서구 정보기관 협의체 '파이브 아이스' 가입도 거론된다.
특히 미국은 대중 공격무기인 중거리미사일을 일본에 배치할 요량이다. 방어무기인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와는 중국의 체감 충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관영 환구시보는 20일 "중국 일부 지역이 (미국 측) 미사일 사정권에 포함된다"면서 "우리는 성능이 더 좋고 양도 많은 둥펑(DF) 미사일로 주일 미군기지를 겨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영토분쟁도 여전하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장관은 18일 쿵쉬안유(孔鉉佑) 주일 중국대사를 불러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에서 중국 군함의 정찰활동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전달했다. 청와대가 양 정치국원의 한국 방문을 공식화하기 바로 전날 벌어진 일이다.
한국은 일본과 다른 길을 택했다. 코로나19 방역 경험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려 애썼다. 지난 5월 중국과 '신속통로(패스트트랙)'를 처음 개설해 양국 기업인 8,000여명이 오갔다. 반면 중국은 일본과의 신속통로에는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이다.
중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고 여긴다. 다즈강(笪誌剛)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장은 글로벌타임스에 "한국은 미국에 편승한 일본과 달리 중국을 겨냥한 공격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런 판단은 중국 입장에서 양 정치국원의 방한이 한국에 대한 압박이나 한미 갈등 유발로 비쳐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필요성과 맞닿아 있다. 양 정치국원이 굳이 싱가포르부터 들르는 것을 두고 미국의 혈맹인 한국의 입지를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이 싱가포르에 기대하는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우방이면서도 할 말은 하는 나라다.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지난 6월 미국을 향해 "아시아 국가들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좡궈투(莊國土) 샤먼대 교수는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인 싱가포르에 대해 "동남아의 전략적 요충국으로서 미중 갈등의 중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