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유민 유족 "구단 사기계약에 속았다"…현대건설은 반박

입력
2020.08.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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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ㆍ변호인 “고유민 극단적 선택, 악플 때문만은 아냐”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 출신 고(故) 고유민 선수 유족과 소송대리인이 고인의 극단적 선택 이유에 대해 “현대건설 배구단의 사기극이 고유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이에 대해 “고유민 선수와 구단이 합의해 계약해지를 했고, 임의탈퇴 처리 후 선수의 은퇴 의사를 확인했다”며 즉각 반박했다.

고인의 모친 권모 씨와 소송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이들이 고유민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이 악성 댓글이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따돌림, 배구 선수로의 앞길을 막은 구단의 사기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족과 변호인은 계약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고유민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구단은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며 “그리고 이를 미끼로 3월 30일 고유민에게 선수 계약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도록 유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월 1일에 일방적으로 고유민 선수를 임의탈퇴 했다”고 말했다. 고유민이 계속 배구선수로 뛰고 싶어했음에도 구단이 일방적으로 임의탈퇴 조치했단 얘기다.

박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대건설은 현행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박 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했다면 고유민은 자유계약선수(FA)”라면서 “FA는 임의탈퇴 처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임의탈퇴로 묶인 선수는 원소속구단이 이를 해지하지 않으면 한국프로배구 V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없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고유민 선수의 의지를 구단이 꺾었다는 게 유족과 변호인 측 판단이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기자회견 직후 발송한 입장문에서 “고인이 2019~20 정규리그가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29일 아무런 의사 표명 없이 팀을 이탈했다”고 반박했다. 구단은 “선수가 인터넷 악성 댓글로 심신이 지쳐 상당 기간 구단을 떠나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하면서 “구단은 상호 합의 하에 3월 30일자로 계약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3월에는 임의탈퇴가 불가능한 시기여서 FA 절차 종료 이후인 5월 1일부로 임의탈퇴 공시를 했다. 6월 15일 고인은 ‘배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확고하게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날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은 경찰이 포렌식 수사로 고인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등에서 찾아낸 자료를 제시하면서 선수단 내 따돌림 정황을 전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고유민 선수가 생전에 가족, 동료와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감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나와 제대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을 일관되게 했다”며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과 코치를 고유민 선수를 따돌린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이 부분에 대해 “구단 자체 조사 결과 훈련이나 경기 중 감독이나 코치가 고인에 대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고유민 선수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해 왔기에 경기와 훈련에서 배제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2013년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고유민은 수비력에 강점이 있는 백업 레프트로 활동했고, 지난해 4월에는 처음 FA 자격을 얻어 현대건설과 다시 계약했다. 2019~20시즌 중인 올해 초에는 리베로 김연견이 부상 이탈하자 대체 리베로로 투입되기도 했으나 부진을 겪다 2월 29일 돌연 팀을 떠났고, 결국 5월 임의탈퇴 처리됐다.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던 그는 지난달 31일 경기 광주시 오포읍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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