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진 사육 곰을 아시나요

입력
2020.08.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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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 곰’하면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육 곰은 웅담을 포함한 곰의 신체를 이용하기 위해 키우는 곰을 말한다. 한때, 웅담을 산업으로 육성하려고 반달곰을 수입해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초, 정부에서 농가 소득을 증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곰 사육을 권장하여 반달가슴곰을 식용으로 기르라고 홍보했다. 그러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반달가슴곰을 거래하는 국가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결국 상업적인 곰의 수출입은 금지되었다.

20여년이 지나고 웅담의 수요나 가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시절부터 갇혀 있던 곰들은 죽기 전까지는 좁은 철장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태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남은 사육 곰은 430여마리. 잊어진 곰들은 1평 남짓한 철장에 갇혀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반달가슴곰은 야생동물이다. 애초에 ‘사육’이 가능한 동물이 아니다. 사람이 가두어 기른다고 가축이 될 수 없는 동물이다. 또한 천연기념물 329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국제 거래를 규제하는 CITES 협약 부속서 1항이 규정한 국제 거래 금지종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한국은 중국과 함께 반달가슴곰의 쓸개의 판매가 허용되는 단 두 개의 나라다.



직접 만난 사육 곰의 상황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솔직히 개 농장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선 더 끔찍했다. 곰 농장을 다녀온 뒤 며칠은 마음이 복잡했다. 물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곰들을 당장이라도 구조하고 싶지만, 수용할 공간이 없으니 불가능했다. 그 상황이 무력했다. 가져간 참외나 사과만으로 순간을 행복해하고, 만들어준 해먹으로 잠깐을 위로받는 곰들에게 미안했다.

저급하고 무식한 정책으로 빚어진 곰들의 고통을 끝내야 한다. 자연방사는 어렵다. 이미 야생에서 살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곰들을 매입해 안락사하거나 잘 기를 수 있는 곳에서 기르는 게 방법이다. 그동안의 고통에 대한 대가가 죽음이어서는 안된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생추어리를 지어 곰들을 보호하는 것이 윤리적인 방법이다. 생추어리는 동물이 평생 편히 지낼 수 있는 보호구역을 말한다. 동물원과 다른 개념이다. 해외에 이미 모범적인 사례가 많다. 베트남의 ‘애니멀스 아시아’나 ‘프리더베어스’는 아주 성공적인 형태다. 유럽에서도 포포스(four paws) 같은 대형단체들이 곰생추어리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육 곰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다. 2018년 영국에서 동물복지를 공부하고 온 최태규 수의사의 제안으로 여러 직업군의 사람이 모여 사육 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결성했다. 갇힌 곰들을 위해 철장에 폐소방 호스로 해먹을 만들어 달아주고 다양한 먹이를 들고 방문한다. 또한 동물자유연대, 녹색연합, 카라등의 대형 단체와 힘을 모아 사육곰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정부에 지속적인 대안을 요구한다.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지난날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이자 예의다. 최근 지자체에서 사육 곰을 수용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환경부에서도 생추어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좁은 철장에 해먹 하나만 달려도 행복해하는 곰들이 흙을 밟고 맘껏 물을 먹을 수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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