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우 하루만 더 내렸으면 초토화"…수마가 할퀸 광주 곳곳 처참

입력
2020.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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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하늘은 도심 곳곳을 허물고 짓이겼다. 이틀 동안 바람 한 점 없이 퍼부어댄 빗줄기에 '수상도시'로 변했던 광주는 9일 비가 멈추고 볕이 들자 처참한 상처를 드러냈다. '물 먹은' 도시는 내상(內傷)만 입은 게 아니었다. 수마(水魔)가 추모의 공간마저 덮치면서 유가족들은 다시 한번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다.

"작년 1월 사촌 오빠가 폐렴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돌아가셨는데, 이번엔 물에 잠겨 숨도 못 쉬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피눈물이 납니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동림동 극락강변에 위치한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S추모관 앞 잔디광장. 전날 밤 추모관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달려온 유가족 수백 명이 발을 구르며 새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꼬박 하룻밤을 지샜는데도 지하 1층에 안치된 유골함 1,800여개가 여전히 물 속에 잠겨 있었던 터였다. 오후 1시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물이 빠진 뒤 유족들이 수습한 유골함은 대부분 침수 피해를 입었다. 광주시와 추모관 측은 침수 피해를 입은 유골을 재화장해 다시 봉안할 계획이지만 유족들은 "황당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추모관이 극락강 바로 옆인데, 관리 당국인 광주시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냐"며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데도 유골함 이송 조치 등을 안 했다면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비판했다.

폭우가 그친 또 다른 수해 현장에서도 힘겨운 복구작업이 시작됐다. 무너진 생계 터전에서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던 상인들도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도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양수기 등 피해복구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복구작업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느리게 진행돼 피해 주민들은 애를 태웠다.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과 아파트, 하수도 등 공공ㆍ사유시설만 1,032건, 이재민만 400여 명에 달하지만 복구작업에 동원된 양수기는 손으로 셀 정도다. 실제 북구 신안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차량 40여대가 물에 잠겼지만 양수기가 부족해 물을 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주민은 "지하주차장 물빼기 작업이 양수기 부족으로 이틀째 물을 퍼내고 있다"며 "이처럼 수작업 중심의 원시적인 복구작업을 하면 언제 복구가 끝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광산구 두정동과 북구 동림동 등 토사 피해 현장에서는 굴삭기 등 복구장비가 절대 부족, 군 장병들이 손으로 수거작업을 벌여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광주시는 뒤늦게 긴급 복구 현장을 중심으로 필요한 복구장비와 인력 등을 파악하고 나섰다.

이번 수해 특징은 단시간 집중 호우로 인한 자연재해라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지방자치단체의 수해 대비 능력 부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실제 이틀간 500㎜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광주천과 영산강을 통해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도심 우수관과 하수관으로 역류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재난 당국 관계자들 사이에선 "폭우가 하루만 더 이어졌다면 광주는 초토화할 뻔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기후변화시대에 맞춰 우수관과 하수관의 통수 용량 기준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이번 폭우로 빗물이 역류하면서 압력을 이기지 못한 오수 맨홀 뚜껑이 하늘로 튕겨져 나가더라"며 "향후 수해 대비를 위해서라도 도심 우수관거 통수 용량을 늘리는 등 관련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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