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가구 고밀재건축' 청사진 불투명… 재건축 단지들 멈칫

입력
2020.08.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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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층으로 풀어줘도 할까 말까인데..."
'5만가구 공급' 근거도 목표치일 뿐

정부가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8ㆍ4 공급대책)'에서 핵심 카드로 제시한 5만가구 규모의 '고밀재건축' 방안이 출발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용적률을 높이고 층고 제한까지 풀어주겠다고 호언했으나, 정작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그다지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다. 뚜렷하지 않은 대책에 주요 재건축 아파트들은 참여 의사를 선뜻 내비치지 않는 기색이다.

4일 정부는 8ㆍ4 공급대책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및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이 민간 재건축 사업에 참여하는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방안을 발표했다.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는 대신, 개발이익을 기부채납으로 환수하는 조건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5년 간 5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정부가 제시한 혜택은 나름 파격적이다. 우선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기존 200~250%인 주거지역 용적률을 300~500% 수준으로 높인다. 층수도 최대 50층까지 허용한다. 현재 90%인 준주거지역 주거비율 상한도 완화되며, 세대당 2㎡씩 설치해야 하는 공원 대신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도 가능해진다.

"35층룰 완화"에 서울시 반대... 정부는 막연한 기대뿐

다만 이를 얻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증가한 용적률의 50~70%은 기부채납으로 환수된다. 규제도 향후 추가될 지 모른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가 과열되거나, 인근 아파트단지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크다. 종상향 결정 권한을 가진 서울시가 공공참여 재건축에 참여하는 주거지역 아파트를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해주지 않으면, 사업 전체가 꼬일 수도 있다.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아파트 대부분이 주거지역으로 묶여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업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서울시가 층고 완화를 풀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용적률만 높이면, 결국 동(棟) 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동간 간격만 좁아지는데, 재건축 조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50층으로 풀어줘도 공공참여 재건축에 참여할지 미지수인데, 기존처럼 35층이면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절대 할 리가 없다" "주거지역인 다른 재건축아파트 조합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대혼란... 5만가구 공급 근거 불확실

실제로 재건축을 준비 중인 아파트는 발표된 내용만으로는 공급대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6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목동신시가지6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조합이 이에 응할 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유보적 입장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기부채납 형태로 용적률 상향에 따른 이익을 환수하고,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사업을 조합에서 반기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5만가구 이상'이라는 공급의 근거도 불투명하다. 현재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시행 인가를 받지 않은 서울 재건축 사업장은 93곳. 정부는 이들 중에 약 20%가 공공참여 재건축에 참여할 경우 5만가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학적 방식 혹은 조합에 사업 참여 여부를 타진해서 20%를 계산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목표치일 뿐이라는 얘기다.

세종= 강진구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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